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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Oct 08. 2024

필승!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나의 독백


욕실로 들어가 칫솔을 집어 들었다. 치약을 짜려고 보니 얼마 남지 않았다. 버릴 때가 된 것 같다.

금, 토요일에 걸쳐 아이들이 집에 오니 금요일 오전에는 새 치약을 꺼내 놓아야겠다.


금요일.

양치질을 하려고 욕실로 들어갔다가 돌돌 말려 있는 치약을 보고 문득 생각이 나, 새 치약 하나를 꺼내 욕실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나는 생명을 다해가는 이전의 치약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힘껏 눌러 칫솔 위에 짜 주었다.

오늘 버려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 녀석 아직도 남아있다. 


둘째가 밤에 도착했다. 씻으러 들어가는 아이에게 "치약 새로 꺼내놨으니 새것으로 써~" 하고 말해 주었다.

그런데 잠시 후 둘째가 나오면서 "엄마, 내가 쓰던 거 꾹 짜서 썼는데 더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다.

"어~그래? 그럼 내일까지 쓰고 버려야겠다."

이 녀석 화수분일세.


다음 날 버리기로 했던 치약은 그로부터 이틀이나 더 쓸 수 있었다.

하도 많이 눌러 짜서 출구 구멍으로 치약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녀석은 마지막까지 그렇게 자신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녀석을 보내주었다.




치약의 독백


주인님이 며칠 전 나를 물끄러미 보시더니 "녀석 이제 할 일을 다 했군, 버릴 때가 되었어."라고 말씀하셨다.

"아직은 아니에요! 제 임무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고요!"라고 목놓아 외쳐 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럴 땐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다음날 나를 다시 찾은 주인님은 여느 때보다 더 힘껏  내 양쪽 어깨를 누르셨다. 나는 어깨에 남아있던 힘을 최대한 빼고 주인님 손에 온전히 나를 맡겼다.

힘을 빼지 않으면 가끔 어깨에 균열이 생겨 구멍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참 교육을 통해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으로 이번 고비는 잘 넘긴 것 같다.

하지만 짓눌린 어깨가 너무 아파 밤새 잠을 설쳤다. 예전에는 세게 눌려도 금방 회복되어 나의 체형을 유지할 수 있었는데,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한번 구부러진 어깨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잠시 신세 한탄에 빠져 있는데 주인님께서 들어오셨다.  손에 칫솔을 들고 돌돌 말려있는  모습을 바라보시더니  곧장 밖으로 나가셨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오신 주인님의 손에는 나를 대신할 누군가가 쥐어져 있었다.

주인님은 가지고 온 그 녀석을 도자기 컵에 넣어주셨다. 얼마 전까지 내가 몸담고 있던 바로 그 도자기 컵에 말이다. 주인님은 내 몸이 돌돌 말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를 컵에서 빼내어 선반 위에 놓아두셨다.


"선배님 저 알아보시겠습니까?"

컵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시선을 위로하고 쳐다보니 이 녀석 안면이 있다. 내가 이곳으로 오기 전 머물렀던 베란다 수납장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바로 그 녀석이다.

"그래, 자네 어찌 벌써 왔나?"

우리 사이에는 규칙이 하나 있었다. 먼저 수납장을 나간 선임이 자신의 임무를 완전히 수행하고 전역했을 때 그제야 비로소 주인님의 허락을 받고 나와, 선임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 내가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건방지게 신고를 하는 것이 아닌가?

버릇없는 후임이며, 주인님께 실망이다.

이제 곧 나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채 인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이곳을 나가게 되리라.


그런데 웬걸, 주인님께서는 후임이 아닌 나를 선택하시어 칫솔 위에 짜주셨다.

아직 내게 임무가 남아있음을 주인님은 알고 계셨던 것이다.


밤잠을 설친 탓에 졸음이 몰려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주인님의 아들인 둘째 **이가 들어온다.

"치약 새로 꺼내놨으니 새것으로 써~"

밖에서 주인님의 외침이 들려온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주인님의 말을 들은 **이가 초라한 내 모습을 보고 나를 휴지통에 던져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칫솔을 꺼낸 **이가 앙상하게 비틀어져 있는 '나'와, 강인함으로 무장한 후배의 모습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당연히 저 녀석을 선택하겠지. 주인님께서 그리하라는 말씀까지 하셨으니..

선택받게 될 후임의 모습을 내 눈으로 차마 볼 용기가 없었때문일까, 나는 착잡한 심경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몸이 공중부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놀라움에 눈을 떴다. 나의 사랑스러운 **이가 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두 번의 고비를 넘기며 명예로운 전역을 향해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바로 오늘,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 낸 나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나의 자리를 후임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주인님께 마지막 경례를 한다.


"필승!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필승!!

필승!!

필승! 임무필승! 임무수행 완료했습니다! 행 완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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