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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Oct 04. 2024

또 하나의 Mystery


나의 독백


하루에 머리카락이 얼마나 빠지는지 궁금했다.


나의 헤어 스타일은 턱선과 평행선을 이루는 길이의 단발머리이다.

짧다고도 그렇다고 길다고도 말할 수 없는 길이지만, 우리 가족이 기거하는 이 공간에서만큼은 내가 가장 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다. 주말이면 집에 오는 딸 역시 나보다 훨씬 더 짧은 머리인지라..


욕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거실, 서재 등 움직임이 있는 모든 곳에서 '저게 뭐지?'하고 다가가 보면 그곳엔 언제나 나의 머리카락이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짧은 머리카락보다 유난히 잘 빠진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하니

그야말로 길어서 눈에 띄는 것이다.

하루에 50~ 70개가 빠진다 하니 열심히 치우며 사는 수밖에.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다.

냉장고 앞으로 가 문을 열고 휘익 한 번 둘러본다. 밑반찬 몇 개를 꺼내면 될 것 같고, 다음은 냉동실이다.

요리할 만한 재료가 있는지 허리를 구부려 냉동실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고기와 해산물이 들어 있는 서랍을 당겨본다. '그래, 오늘은 새우 요리다!' 하며 봉지를 꺼내고 서랍을 닫으려는데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뭐지? 다시 자리를 잡고 서랍을 끝까지 당겨본다.


도대체 얘는 왜 여기 있는 거야?

머리카락이다. 나의 긴 머리카락.

이해할 수 없다.

방이며 거실, 서재와 주방은 하루종일 내가 활동하는 공간이기에, 하루 50개 이상 빠진다는 머리카락이 그곳에서 발견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냉동실 서랍에 있는 얘는 뭐지?

냉장고처럼 자주 여는 곳도 아니고 어쩌다 한번 열어보는 냉동실, 그것도 서랍 속에서 녀석을 발견하다니.

그 찰나의 순간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냉동실 서랍까지 날아가 자리를 잡았단 말인가?

그야말로 미스터리요, 불가사의다.


삭발을 해야 한단 말인가?




냉장고의 독백


나는 우리 주인님의 맛깔난 반찬 냄새가 좋다.

어제 만들어 넣어주신 오징어 진미채는 우리 주인님이 자주 만드시는 반찬이다.

자주 만드신 다는 것은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반찬이라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나도 그 냄새가 좋다.


나는 주인님이 만드신 정성스러운 음식이 쉽게 변하지 않도록 적정한 온도유지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한참 동안 문이 열리지 않아 일정 온도가 유지되면 그제야 나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주인님 작품을 엿본다.

내게는 꽤나 흥미로운 시간이다.

음~ 이건 연근조림이고, 그 옆은 진미채,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견과류 멸치볶음도 보인다.

그리고 모퉁이에 쌓여있는 여러 종류의 김치.

코를 벌렁거리며 나는 이 모든 작품의 냄새를 하나씩 맡아본다.

하지만 이렇게나 좋은 나의 취미를 주인님은 알아채지 못하시는 건지 가끔 접시에 무언가를 담아 내 몸속으로 밀어 넣어 나의 행복을 방해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시커먼 숯을 넣으시더니 두어 달 전에는 식빵을, 지난달에는 커피찌꺼기를 밀어 넣으셨다.

처음엔 뭔지 몰랐으나 이 녀석들이 내가 음미하는 소중한 냄새를 훔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런데 내 옆에 살고 있는 김치냉장고라는 친구는 자기 몸에 냄새가 나는 게 너무 싫어서 주인님이 넣어주시는 숯이며 커피찌꺼기가 오히려 고마운 선물과도 같다고 얘기했다.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인가 보다. 나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해줄 것 같진 않지만 나는 몸의 크기만큼 마음도 넓으니 다름을 인정하고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하기로 한다.


주인님이 저녁 준비를 할 시간이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하실까?

주인님이 내 몸 중 가장 차가운 냉동실 문을 여셨다.

이것저것 둘러보신 주인님은 새우가 담긴 봉투를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새우 요리를 하시려나보다. 많은 양으로 준비하셔서 남은 요리는 냉장고로 넣어주셨으면 한다. 냄새 맡을 생각에 벌써 신이 난다.

그런데 문을 닫으려던 주인님이 갑자기 나를 째려본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 눈빛이 차갑고 매서웠다.

점점 가까워지더니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벌려 나를 꼬집을 자세를 취하신다.

"꺄악!"

난데없는 돌격에 두려움 가득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주인님의 손이 닿는가 싶더니 아픔은커녕 그동안 가려웠던 내 몸의 일부가 시원해지는 것이 아닌가?

눈을 떠보니 주인님의 손에 한 올의 긴 머리카락이 쥐어져 있다.

앓던 이가 빠진 게 바로 이 느낌일까? 개운하고 상쾌해 콧노래가 절로 난다.

역시 우리 주인님. 명의가 따로 없다.

그런데 주인님의 표정이 묘하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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