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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Sep 17. 2024

안녕, 나의 꼬마친구


나의 독백


결혼 후 우리와 함께 한 자동차의 역사는 이러하다.

우리의 첫 자동차는 대학 이후 남편이 쭈욱 사용해 왔던 하얀색 프레스토였다. 사랑과 전쟁을 함께했던 그 차는 결혼 3년째 되던 해에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고 이후 우리는 중고차 한 대를 구입했다.

나름 잘 살펴보고 샀다고 생각했었는데 한마디로 실패였다. 

결국 첫째인 딸아이가 세 살이 되기 전, 그 중고차는 가장 짧고도 불편했다는 한 줄 기억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이 좋지만은 않았던 기억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마침내 큰 결심을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새 차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집 앞에서 이 녀석을 처음 마주한 순간, 나는 왠지 이 녀석과는 아주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와 함께한 지 10년이 지날 무렵 나는 맘 속으로 녀석과 약속했다.

'그래, 15년까지는 우리 함께다!'

그렇게 무탈하게 3년의 세월을 더 보내고 14년째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9살이 된 둘째 아이가 뒷좌석 문을 여는 순간 "엄마! 자동차 문이 이상해요!" 하며 소리를 질렀다. 운전석에 타려던 나는 곧장 뒷좌석의 열려 있는 문으로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문을 열면 차체와 문의 이음새 부분에 굵고 단단해 보이는 연결고리 두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부식되어 떨어진 것이었다. 말하자면 나머지 하나의 고리로 간신히 문을 지탱하고 있는 셈이었다. 문의 상태가 이렇다 보니 문을 열자마자 문짝이 아래로 처지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문제로 자동차가 고장 났다는 얘기는 들어봤어도 문짝이 떨어졌다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또 황당했다.

고리 두 개가 동시에 이런 상태였다면 아이의 발등에 떨어질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동안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오래된 차라 앞좌석에서 뒷 문을 잠글 수 있는 장치가 없었기에 임시방편으로 고장 난  왼쪽 뒷 문을 뒷좌석에서 눌러 잠그고 아이들에게는 당분간 오른쪽 문만 이용하도록 당부를 했다.

남편과 상의를 하니 불안해서 안된다고 그리고 그 정도면 오래 탔으니 새 차를 구입하는 게 맞다며 빠른 시일 내에 차를 보러 가자고 했다.

유독 정이 들어서였을까 아니면 맘속으로 다짐했던 15년을 채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깊은 곳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중학생이던 첫째는 담담히 받아들였지만 어리고 유독 정이 많은 둘째는 싫다며, 절대로 팔면 안 된다고 속상해했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순간을 함께 했으니 녀석과의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책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던 둘째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뒤돌아보며 얘기한다.

"엄마, 학교에서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보내면 안 돼요. 아저씨한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꼭 얘기해줘야 해요!, 꼭이요!" 

신신당부하며 집을 나서는 아이의 어깨가 유난히 축 처져 보였다.


아저씨와의 약속은 둘째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게 잡혀 있었다.

그런데 아뿔싸,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오신 게 아닌가. 

이를 어쩌나,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겠다고 했는데..

아저씨께 사정을 말씀드렸기에 조금 더 기다려 주시기는 하셨지만 다음 일정 때문에 가보셔야 한다며 결국 시동을 거셨다.

그렇게 14년간 정들었던 녀석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오래 사귄 친구 하나를 떠나보낸 느낌이었다. 마음 한 편이 아려왔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서는데, 잠시 잊고 있었던 둘째 생각이 나 속상한 마음이었다.

잠시 후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도착한 것이다.

'뭐라고 얘기하지? 기다려주지 않았다고 속상해할 텐데, 그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 주지?'

떨리는 마음으로 현관을 향했는데 나와 마주친 아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쪼르르 흘러내렸다.

"엄마, 나 봤어. 우리 자동차가 정말 가버렸어." 애써 참으려 하고 있는 아이의 눈에서 큼직한 눈물 방울이 연이어 떨어졌다.

나는 울먹이는 아이를 껴앉으며 토닥거려 주었다. 그래, 보고 갔구나....



자동차의 독백


주인님은 나의 첫인상이 좋았는지 우리가 만난 첫날부터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 

처음에는 지상주차장에 나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는데 한두 달간은 아침저녁으로 베란다로 나와, 사랑 가득한 눈으로 나의 모습을 내려다보시곤 했다. 찬바람이 불어올 무렵엔 조금은 따뜻한 지하주차장으로 자리를 옮겨 주셨는데 나의 주인님은 두 대만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 혹은 옆 칸의 차량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비교적 남는 공간이 여유로운 장소에 나를 데려다 놓으셨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편안한 자리에서 편안한 맘으로 쉴 수 있었다.


나는 주인님의 가족 중 둘째인 남자 꼬마 아이와 특별히 친하게 지냈다.

꼬마는 갓난아이 때부터 내 품속 아기의자에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기도 했고 울기도 많이 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나에게 호기심이 생겼는지 이쪽저쪽을 만져가며 귀찮게도 하였고 과자나 음료수를 쏟아 나를 불편하게도 했다. 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나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천사를 마주하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던 꼬마는 내겐 둘도 없는 친구였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나에게 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인대파열.

인대 하나가 끊어져 뒷좌석 문을 열 때마다 커다란 아픔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노화가 시작된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인대가 파열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뒷좌석 문 전체를 갈아 끼우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그또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씁쓸했지만 어디로 가게되든 나는 받아들여야만 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14년이란 세월 동안 함께해 왔던 이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야만 한다는 사실이었다. 태어난 후 처음 해보는 이별이라 그런지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하지만 그날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낯선 사람이 나를 찾는다. 내 옆에 서서 주인님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듯하더니 마침내 시동을 건다.

사랑하는 나의 주인님은 나를 어루만지며 이별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잠시 후 낯선 이가 나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갔다. 나의 주인님은 계속 나를 바라보며 꼼짝 않고 서 계신다. 주인님의 아련한 마지막 인사가 전해져 울컥한 마음이다. 그렇게 주인님의 모습을 뒤로하고 아파트 정문을 향해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데, 저 멀리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꼬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와 마주하게 된 꼬마 친구는 멈춰 선 채로 고개를 움직이며 스쳐 지나가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작고 귀여운 저 눈에 나의 마지막 모습을 담기라도 하려는 듯.

백미러를 통해 뒤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꼬마의 사랑스러운 마지막 모습을 내 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순간 꼬마 친구가 울먹이며 손을 흔든다. 잘 가라고, 잘 가라고.

마지막 인사를 하며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염없이 손을 흔든다.


안녕, 사랑하는 나의 꼬마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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