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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Sep 24. 2024

힘겨루기


나의 독백


우리 아파트는 집집마다 베란다에 화단이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예쁜 과 나무를 심어 멋지고 아름다운 공간을 꾸며 놓았겠지만, 우리 집 화단은 그저 한두 차례의 시도와 실패를 끝으로 몇 년째 덩그러니 방치되어 오고 있었다. 내 손을 거치기만 하면 대부분의 식물이 유명을 달리했기에 나는 그들을 위한답시고 아예 우리 집에 들이지 않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반기지 않는 한 분이 계셨으니 바로 울 엄마다.

"저 좋은 공간을 아깝게.. 뭐라도 키워보지."

우리 집을 방문하시는 날이면 늘 빠뜨리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다.


죽어가는 모든 식물을 살려내시어 이웃으로부터 식물계의 명의라 불리시는 우리 엄마는, 단독주택에 살던 20여 년 동안 꽃밭과 더불어 커다란 온실화원까지 직접 만드시고 그곳에서 아빠와 함께 200 화분이 넘는 난을 키우셨다. 출품도 여러 번 하셨으며 몇 차례 수상하신 기억이 난다. 

그런 부모님에게서 태어난 '나'는 불행하게도 똥손이었다.


 "그럼 아이비라도 키워봐. 그냥 둬도 자라는 녀석이니까."

나는 그날 엄마 손에 끌려 동네 화원을 찾았고 아이비 한 화분을 사 와 화단에 심었다. 

은 공간의 흙더미 속에 단 하나의 화분을 부어 심으니 그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엄마의 말씀대로 무럭무럭 자라나 화단 바닥을 뒤덮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벽을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녀석은 그렇게 야금야금 자신의 영역을 넓혀 마침내 천장까지 뒤덮고는 반대편 벽을 따라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ㄷ' 자를 지나 'ㅁ'을 만들어 출발점에 이르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런 기세라면 조만간 베란다 전체가 아이비에 의해 점령당할 것이다. 

몇 년간 빈 채로 방치해 두었던 화단을, 이번엔 꽉 채운 채로 나는 또다시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조금 더 일찍 마음을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한심한 후회가 나를 실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양손에 장갑을 끼고 화단으로 달려들었다. 

그런데 잎을 잡고 살짝 당기면 금세 떨어질 줄 알았던 이 녀석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양 발에 힘을 주고 두 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다시 잡아당겼다. 

그러기를 수차례. 어느새 나의 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그런데 이 녀석 내가 당기면 당길수록 더욱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버틴다.

마치 나와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갑자기 온몸의 땀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녀석 식물이 아니고 동물인 거야?"




아이비의 독백


나는 아름답고 예쁜 꽃들과 함께 화원에서 살고 있다.

따스한 봄기운이 화원에 스며들 때면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보러 온다.

그들은 화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도 하고 때론 멈춰 서서 요리조리 살펴보기도 한다. 고민 끝에 마음을 정한 그들은 나와 동고동락했던 친구들 중 몇몇을 데리고 화원을 나선다.

선택받은 친구들이 향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 분명 행복한 곳이리라. 저들을 데려가는 사람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사랑 가득한 눈빛과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으니 말이다.


어, 한 사람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다. 앗, 아줌마들은 아줌마라 하면 싫어한다는데..

그분은 나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바구니에 담는다. 우와 드디어 나도 선택을 받았다. 앞으로 나는 이 분을 주인님으로 모실 것이다.


주인님이 정성스레 나를 화단에 심어주셨다. 이 넓은 공간을 진정 나 혼자 쓴단 말인가, 야호!

이렇게 두신 데에는 마음껏 뻗어나가 이 공간을 채우라는 주인님의 뜻이 담겨 있으리라.

오늘은 요기까지 그리고 다음 날은 저기까지, 나는 꼼꼼하게 계획을 짰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밀고 나갔다. 나는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까지 점령했다. 이제 내가 출발했던 곳을 향하여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마침내 주인님의 화단이 나의 꾸준한 노력으로 멋지게 변모했다. 

이 정도면 주인님도 무척 기뻐하시겠지? 뿌듯함에 들뜬 마음이다. 

때마침 주인님이 베란다 문을 열고 나를 빤히 쳐다보신다. 

쿵쾅쿵쾅. 칭찬받을 생각에 심장이 요동친다. 그런데 뭐지?

늘 웃으시던 주인님의 얼굴이 오늘은 심상치가 않다.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기신 걸까? 왜 하필 오늘? 


잠시 후 돌아온 주인님의 손에 장갑이 끼워져 있다. 물건을 옮기시려나?

무장한 주인님께서 나를 향해 다가온다. 그러더니,

"으악!"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주인님이 나를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주인님,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어느새 나의 몸은 땀으로 흥건해졌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버텨 보지만 그럴수록 주인님은 더 힘주어 나를 당기신다.


갑자기 온몸의 땀이 싸늘하게 식으면서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인님, 도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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