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매일 접속하는 사이트에서 비밀번호를 변경하라는 문자가 계속 떴다. 귀찮아 미루기를 반복하다 드디어 큰 맘먹고 대대적인 변경에 들어갔다.
여러 사이트의 비번을 모두 변경하고 마무리하려는데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페이스북 비번도 이 기회에 변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로그인을 하게 되었다.
순간 알림 표시에 적혀있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어마어마하다.
대학 친구가 올린 글이 22년 8월서부터 쌓여 있었다.
그의 근황이 궁금하여 최근에 올린 글 몇 편을 읽어보았다.
현재 한국에 잠시 들어와 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같은 나라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 친구는 결혼 후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하였고 그 결실로 미국 어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몇 년에 한 번 잠시 나왔다가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안식년 휴가를 맞아 한국에 들어와 연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안식년인데 왜 일을 하는 걸까 궁금했다.
비번 변경하려고 들어갔다가 접하게 된 친구 소식에 나는 짧은 안부 문자를 남겼고, 몇 분 뒤 친구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답변이 왔다. 이번에는 꼭 보자고.
85년 대학에 입학해 친구가 되었으니 참으로 많은 세월이 지나갔다. 사진 속 친구의 얼굴이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음악다방의 추억.
우리의 대학시절은 지금의 '카페'라는 곳을 대신하던 '다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다방에서 커피숍으로 넘어가는 시기로 두 이름이 혼재해 있었던 것 같다.
수십 가지 종류의 원두가 있고, 바리스타의 기술에 따라 맛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는 지금의 카페와는 달리 프리마와 설탕의 비율로 맛이 정해지는 인스턴트커피와, 취향에 따라 각설탕을 추가하여 마시는 원두커피가 다방의 주메뉴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약속은 유명하거나 제법 큰 건물 앞, 즉 길에서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라 교통체증이나 갑작스러운 중요한 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해야 하는 경우 직접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방은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다방에 앉아 있다 보면 다방 카운터에 놓여 있는 전화벨이 자주 울렸는데 사장님 혹은 아르바이트생이 전화를 받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카운터로 뛰어간다. 수화기를 건네받은 그 사람은 잠시 후 가방을 챙겨 다방 문을 나선다. 만나기로 한 상대방이 사정이 생겨 약속이 취소된 경우이거나 약속장소가 변경된 경우이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당사자는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다방의 전화번호를 찾아내기 위해 공중전화부스에 매달려 있는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이용하거나, 혹은 예전 약속에서 가지고 온 그 다방의 성냥갑에서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을 하곤 했다.
이런 이유 외에 다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특히 대학교 근처 다방은 그런 이유로 학생들이 많이 모였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다방에 가게 되는 날이면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필통과 메모지를 꺼내 각자의 희망곡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는 그 종이쪽지를 DJ에게 가장 먼저 전달하기 위해 깔깔거리며 서로를 밀치고 뛰어가곤 했다.
자신의 신청곡이 가장 먼저 들려지기를 고대하면서.
신나고 빠른 템포의 곡을 신청하던 여느 친구들과는 달리 그 친구와 나는 조동진의 음악을 자주 들었다.
85년 조동진 3집이 발매되었을 무렵 우리는 들뜬 마음에 조금은 커진 목소리로 열띤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는 LP를 통해 음악을 들었다.
미세한 먼지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여 찌지직 거리는 소리가 들리거나, 아예 몇 소절 건너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깨끗하고 선명한 소리에 길들여진 지금도 예전의 그 날 것의 소리가 그리워진다.
모든 이들의 그러한 그리움이 점점 커져 아날로그 감성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다.
세련되게 다듬어지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한 그 지직거림에 잘 어우러지는 노래가 바로 조동진의 노래일 것이다.
그의 음악은, 모든 것이 아날로그적이었던 그 시절 특별히 더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지는 그런
노래였다.
나는 그 당시에도 그 친구를 만나면 조동진이 떠오르곤 했었다.
딱히 닮은 것 같지 않은데 어딘지 모르게 닮은, 분명 전체는 아닌데 어느 한구석에서 묻어나는 분위기가 비슷한, 말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묘한 연결고리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33년이 지난 지금도 조동진의 노래를 들으면 그 친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가 보다.
간혹 스치는 바람에, 조동진의 우수 어린 모습과 그를 닮은 옛 친구가 생각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평온하고 잔잔한 선율과 함께 그의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기타의 맑은 울림은
언제나 마음속에 아련함으로 자리 잡았다.
https://youtu.be/ze2hM9mkDpA?si=3aE1rovkKWww4yh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