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미국에 살고 있는 언니와 조카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
조카의 베프가 결혼을 하게 되어 나오게 되었는데 언니도 겸사겸사 함께 나왔다.
우리는 참으로 오랜만에 각자의 배우자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우리 남매들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물론 엄마도 함께.
기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우리는 80년대를 주름잡던 명곡들을 백뮤직으로 깔고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얘기하랴 노래 부르랴 시끌벅적한 가운데 우리는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우리의 시간은 국민학교(추억여행에 '초등학교'는 아닌듯하여) 시절부터 시작하여 중,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생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에피소드로 넘쳐났다.
블루투스에 내 휴대폰이 연결되어 있었기에 선곡은 주로 내가 했고, 가끔 추천곡을 받기도 했다.
수많은 노래들과 수다가 어우러지면서 많은 에너지가 소진될 무렵 나는 문득 떠오른 내 어린 시절 18번 곡 서유석의 <가는 세월>을 선택했다.
간혹 옛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릴 때마다 느끼게 되는 생각이지만, 수없이 자주 들음에도 불구하고 요즘 노래는 가사가 잘 기억나질 않는데 오히려 아주 오래된 노래들의 가사는 선명하게 생각난다는 것이다.
노래방의 등장이 여기에 큰 몫을 한 것 같다.
화면에 등장하는 가사를 보고 부를 수 있으니 굳이 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또 하나는 젊은 세대와 다르게 나의 노화된 귀가 가사를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한두 번만 들어도 바로 따라 부르던데 나는 10번을 들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가는 세월>이 흘러나왔다.
전주가 끝남과 동시에 따라 부르기 시작하여 노래가 끝날 때까지 모든 가사가 기억났다.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는 게 스스로도 놀라웠다.
1977년 발표되었던 곡이라 하니 47년 전의 노래다.
요즘은 가족이 모일 때 유치원 이하의 어린이들이나 재롱잔치를 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가족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무렵 명절이나 가족의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친척분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즐겨 불렀던 노래가 바로 서유석의 <가는 세월>이었다. 그 곡은 당시에도 어른들이 즐겨 부르시는 곡이었다.
수줍음 많던 내가 고개를 떨구고 긴장된 모습으로 <가는 세월>을 부르고 나면, 어르신들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의 선곡과 그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 웃기다며 박수를 치는 내내 웃으셨던 것 같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내몸이 흙이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가사를 떠올려보니 내가 생각해도 좀 웃기긴 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부른다고 하기에는 좀...
그 이후로도 나는 중학교 소풍 때,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잔디광장에 앉아 돌아가며 노래를 부를 때에도 자주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이렇게 어릴 적, 어울리지 않았지만 18번이었던 이 노래가 이젠 제법 잘 어울리는 나이가 되어 다시 듣게 되니 가사가 전해주는 삶의 깊이가 와닿아서인지 새롭다는 느낌마저 든다.
회사에 나와 일을 할 때면 하루가 왜 이렇게 길지라고 말을 하지만,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또 계절이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면서 이렇게 또 한 해가 총알같이 지나가는구나 하며 한숨을 쉬게 된다.
아이들이 어느새 독립할 정도로 자라 주말이 되어야만 얼굴 한번 볼 수 있는 요즘, 같이 나이 들어가는 남편과 술잔을 맞대고 전의를 다질 때면 어느덧 노년의 길로 접어든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어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https://youtu.be/CngzjB9D3x8
사진: Unsplash의 Aron Visu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