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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콩마음 Apr 25. 2023

5. 스트레스의 끝자락

불면증과 하나 되다.

5월 말 사건의 앙금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그날 이후로 내 마음속에는 자격지심이란 놈이 크게 자리 잡았다.

이러한 증상은 업무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이미 반복하여 확인한 일도, 혹시 실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에 시도 때도 없이 확인해 보는 버릇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새로운 달이 시작될 무렵이면 나는 모든 파일을 열어 전월 자료의 흔적이 남아 있는지 미리 확인했다. 

그것은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


그동안 y님이 내게 보여주었던 행동들로 마음이 많이 불편했었지만 설마 나를 무시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 내가 예민한 거겠지 하며 마음을 다독이며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 또다시 발생했다.

그날 우리는 점심식사를 한 후 각자 책상 앞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겨울을 앞두고 있어서였는지 어그부츠 얘기가 나왔다.

나는 예전엔 어그부츠가 있었는데 밑창이 낡아지는 바람에 버리게 되어 부츠를 하나 장만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y님은 자신의 어그부츠가 싸구려였다면 자기도 버렸을 텐데 자기 거는 비싼 거라 못 버리고 있다고 했다.

아~ 그럼 나는 싸구려라 버릴 수 있었다는 건가?


시간이 흐를수록 y님의 예의 없는 태도는 늘어만 갔다.

우리는 늘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는데 y님은 항상 도시락을 싸와서 사무실에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남편과 나, 그리고 m님과 b님(새로 입사한 직원) 사무실에 남아있는 y님에게 "맛있게 드세요"라는 인사를 하고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인사를 받고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대답을 하는 횟수는 한 달에 다섯 손가락을 다 채우지 못했다.

남편이 업무 관련하여 "y님~ 이거 이렇게 해주세요."라고 얘기를  때에도 '네'라는 말 한마디 듣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

남편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화가 났다. 한편으로 짠한 감정마저 들었다.

부부란 이런 건가...


y님에게 대답 좀 잘하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까지 올라온 그 말들은  좀체 입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내가 개입해서는 안된다. 물론 개입할 위인도 못된다.

y님으로부터 황당한 일들을 여러 번 겪었을 때에도 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었다.

맘에 들지 않지만 그게 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해야 할 말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사니까 만만하게 보인 거 아니냐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집에 와서 늘 후회한다)

어디에선가 나와 같은 성격을 가진 자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면서 지금도 끙끙거리며 살고 있으리라.


계속된 스트레스 탓인지, 갱년기 때문이었던 건지,  그 무렵 반갑지 않은 녀석이 나를 찾아왔다.

불. 면. 증.

그리고 하루 3시간 이상 잠자지 못하는 나의 삶은 2년간이나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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