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올라와 모처럼 집 앞 맑은 공기에 흠뻑 취해본다.
늘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며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택배 트럭 한 대가 멈춰 선다. 요즘은 택배를 이용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집 앞에서 택배차량을 만날 확률은 이웃 주민을 만나게 될 확률보다 훨씬 높다.
무심하게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느린 걸음을 내딛는 순간, 알 수 없는 노랫소리가 귓전을 스친다.
누군가가 휴대폰 속 노래를 들으며 걸어가고 있나 보다 생각했을 때 택배트럭 운전석의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어렴풋이 들려왔던 그 노랫소리가 갑자기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기계가 아닌 택배 기사님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저 조용한 흥얼거림이 아니었다.
전국노래자랑에 초대된 어느 이름 모를 가수가 자신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열창하는 느낌이다.
이내 고개를 돌려 나의 시선은 꽃을 향했지만 노래와 하나 된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라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무대 : 아파트 우리 동 앞마당
가수 : 택배아저씨, 문득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생각나 아저씨로 부르기로 했다.
관객 : 돌콩마음
강약 조절과 꺾기 기술을 적절히 사용하시며 트로트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시는 아저씨,
트럭 짐칸 문을 열고 짐을 내리시면서도 노래는 계속된다.
멋지다.
아저씨가 짐을 어깨에 메시더니 공동 현관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로 향하신다.
노랫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 들리지 않는다.
나는 다시금 나무와 꽃들에 마음을 돌려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성악창법을 가미한듯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아저씨가 물품을 배달하시고 1층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반가운 이 마음은 뭐지?
정훈희의 <꽃밭에서>
배달을 완료한 성취감이셨을까?
잠시 트럭 짐칸 앞에 멈춰 서시더니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두 팔을 옆으로 뻗으신 채 노래를 부르신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와우 정점을 찍으셨다.
멋. 지. 다.
목소리가 멋지다.
저토록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시는 아저씨의 모습이 멋지다.
시간에 쫓기는 자가 아닌, 시간을 다스리는 자의 기운이 느껴져 더욱 멋지다.
그래서일까 무거운 짐을 나르시는 아저씨의 모습은 노래의 선율에 올라타 공중부양을 할 수 있을 만큼 가벼워 보인다.
인생을 행복으로 채워나가시는 아저씨의 모습에 존경의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
그렇게 <꽃밭에서>를 완창하신 아저씨는 트럭에 몸을 싣고 다시 운전대를 잡으신다.
멀어져 가는 트럭에서 새로운 노래가 흘러나온다.
어떤 노래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