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회사생활을 하기 전 나는 전업주부였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가정생활과 신앙생활, 그와 연결된 봉사활동을 하며 나름의 알찬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둘째 아들과 남편의 아침밥을 차려준다.
그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외출할 채비를 위해 입고 나갈 옷가지와 가방을 챙겨둔다.
식사를 끝낸 두 사람이 집을 나서면 나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가 설거지를 끝내고 방을 둘러본 후 이부자리를 정돈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미사가 없는 날을 제외한 평일이면 나는 늘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까지는 차로 움직일 때도 많지만 햇살이 좋은 날이면 나는 운동삼아 자주 걸어가곤 했다.
둘 중 하나의 이 선택이 나를 혼란에 빠뜨린 그날은 레지오 회합이 있는 금요일이었다.
여느 금요일처럼 나는 미사에 참례한 후 레지오 회합을 위해 회합실로 향했다.
누군가가 "오늘 회합 끝나고 다 함께 점심식사 해요~"한다.
모두들 시간이 괜찮다고 하여 회합이 끝난 후 우리는 성당 주차장에 다시 모였다.
이런 경우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차를 가져온 사람 중 두 명을 정해 그들의 차에 나눠 타고 식당으로 움직인다. 식사가 끝나면 두 명의 운전자 중 한 명이, 당일 성당에 걸어온 사람들을 자신의 차에 태워 각자의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고, 또 다른 차 한 대가 나머지 사람들을 태워 성당주차장에 내려주면 그들은 각자 자신의 차로 갈아 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렇게 점심장소로 이동한 우리는 맛난 점심과 행복한 수다를 끝내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명이 "차 안 져온 사람 손들어!"라며 큰 소리로 외쳤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이 손을 흔들며 그녀의 차에 올라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일요일 아침, 주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차키를 챙겨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누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주차공간이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역시 그런 장소가 있다. 지하 1층, 계단 출입문 맞은편 기둥 옆이 바로 그곳이다.
그날도 나는 당연한 듯 그 공간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라, 없다.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다른 차들로 꽉 차 있는 걸 보니 아마도 내가 한 발 늦어 다른 곳에 세워두었나 생각했다.
지하 1층을 한 바퀴 돌았다. 없다.
그럼 지하 2층으로. 여기도 없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두 군데 모두 없으니 이번엔 지상이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에휴, 지상부터 보고 내려올걸, 이놈의 건망증!' 하며 실소했다.
지상은 일직선이고 넓지 않으니 금방 찾을 수 있으리라.
아... 머릿속이 하얘졌다
모든 주차장을 다 뒤졌는데 내 차가 없다. 순간 불안이 엄습했다.
'뭐야~차를 잃어버린 거야?'
다시 한번 더 지하 2층, 지하 1층, 지상을 살펴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5분 정도 나는 멍하니 길 위에 서 있었다.
정신을 차려야지라고 생각한 순간 내가 성당을 가려고 하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가 없으니 시간이 촉박하다. 버스 정류장을 향하여 미친 듯이 달려갔다.
마을버스를 타고 성당부근 주차장에서 내리자마자 난 또 뛰어야 했다.
성전에서는 이미 시작성가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내 몸은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미사에 집중할 수가 없다. 마음을 잡아보지만 머릿속은 온통 '나의 차는 도대체 어디로 갔나?'였다.
미사 중에 이래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미 내 머릿속은 지난 나의 행적을 역순으로 추적하고 있었다.
'차가 사라진 건 일요일 아침이다.
하루 전 토요일은 운전을 하지 않았다.
금요일 레지오 후 점심식사를 함께했고 차를 가져가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차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다.
그 전날인 목요일은 시장을 봤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와 차 트렁크에서 시장바구니 두 개를 내린 기억이 확실하니 그전으로 더 이상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어느새 파견성가가 귓전에 울렸고 성가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한 곳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갔다.
성당 앞 공터주차장.
지금은 말끔히 잘 정비되어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은 흙과 돌이 섞여있는 울퉁불퉁한 바닥에 잡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는 거친 땅이었다. 겨울이면 그 잡풀들이 그대로 시들고 얼어 더욱 지저분해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깊숙한 끝자락에 낯익은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틀간 그곳에 방치되어 있던 나의 자동차는 하얀 눈으로 뒤덮여 거대한 자동차 눈사람이 되어 있었지만 나는 그 녀석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틀 전 금요일, 나는 내 차를 운전해서 성당에 도착했고 그 사실을 잊은 채 다른 사람의 차를 타고 해맑게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자동차의 이야기
나의 주인은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큰 가방 하나를 둘러메고 주차장 계단을 내려와 나를 찾는다.
오늘따라 큰 가방이 더욱 무거워 보이는 걸 보니 레지오 회합이 있는 날인가 보다.
언제나처럼 주인은 문을 잠그고 시동을 켠 후 큰 가방 안을 한번 더 들여다본다.
차에 타자마자 가방을 열어 일일이 소리를 내며 빠진 게 없는지를 확인하는 건 주인의 오래된 습관이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이렇다. 그 확인은 집에서 나오기 전 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가끔은 지상으로 나를 올린 뒤 다시 주차를 하고는 집으로 올라가 무언가를 손에 쥐고 뛰어나오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니 말이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 성당으로 향하는 주인은 성당 입구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며 창밖을 살핀다.
아마도 어디에 주차를 할 것인지 고민 중인 것 같다.
성당 안 주차장은 공간이 협소하여 만차 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에 나의 주인은 대부분의 경우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공터 주차장에 나를 데려다 놓는다.
매끈한 시멘트 바닥의 성당주차장을 기대했으나 오늘도 나의 주인은 울퉁불퉁 돌밭주차장으로 나를 이끈다.
비가 오면 진흙이 묻고, 맑은 날이면 메마른 돌들이 튀어 나를 아프게 하는 이유도 있지만 내가 이 공간을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이어 사이에 끼는 아주 작은 돌 알갱이 때문이다. 한 번 끼인 녀석은 주인이 감지해 빼주기 전까지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한다. 가끔 우리 주인이 치실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의 타이어에도 아주 굵은 치실을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앗,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주인이 일어나 문을 잠그고 부지런히 또 뛰어간다.
주인이 올 때까지 나는 잠시 쉬어야겠다. 흙 위를 덮고 있는 살얼음이 차갑지만 이쯤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다.
주인이 올 시간이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소식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함께 줄지어 서 있던 다른 친구들은 이미 집으로 간 것 같다.
나의 주인은 왜 안 나오는 거지? 친구들과 함께 점심 식사하러 간 건가?
역시 그랬군. 저 멀리 주인의 친구들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나는 그들을 태우고 그들의 집 앞까지 데려다준 경험이 여러 번 있기 때문이다.
다들 인사를 하고 흩어지는데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 된 일인가?
어느새 밖은 캄캄해졌고 돌밭주차장엔 나 홀로 남아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밤이 찾아왔지만 주인은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눈이 내린다. 웬만한 추위는 견딜 수 있는 '나'이지만 시야가 하얀 눈으로 가려지는 건 답답해서 견디기가 힘든다. 어제 하루는 잘 견뎠는데, 앞이 보이지 않아 그런지 오늘은 조금 외롭기도 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고요하던 이 장소가 시끄러워졌다. 경험상 레지오 가방이 보인 후 두 번의 칠흑 같은 밤을 보낸 듯 하니 일요일이 되었나 보다.
그렇다면 이 시끌벅적한 소리는 주일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신호다.
희망을 가져 본다.
분주함이 사라지고 다시금 고요함이 찾아왔지만 주인은 여전히 소식이 없다.
절망이 찾아온다.
이 끝없는 기다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건지...
혹시 나를 버리기라도 한 걸까?
미사가 끝났나 보다. 다시금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그 순간, 귀에 익은 발걸음 소리가 내게 전해져 나의 커다란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쿵쿵거리는 이 소리는 나의 주인이 뛰어다닐 때 나는 소리다.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점점 더 커져가는 발걸음 소리에 나의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
"하아"하는 긴 한숨 소리와 함께 무언가 격렬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살짝 드러난 틈사이로 와이퍼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주인의 두 손이 보인다.
하얀 눈에 가려 캄캄했던 내 시야가, 비로소 주인의 손을 통해 빛을 보게 되었다.
문이 열리고 주인이 나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주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쓰다듬는다.
"내가 너를 여기에 두고 갔어. 여기에 두고 갔구나."
도대체 우리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