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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루 Dec 08. 2018

대학 내 총여학생회, 왜 필요할까?

총여학생회가 필요한 이유는 너 때문이야

  학교가 있으면 학생회가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도 전교회장단 혹은 학생회, 대의원회 등이 있듯이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초·중등 교육기관와 대학교는 인원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학의 가장 대표되는 학생회를 '총학생회'라고 부른다. 그런데 대학에는 종종 희한한 이름의 학생회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총여학생회.' 대체 총여학생회가 뭘까?


  사실 어렵지 않다. 이름 그대로의 뜻이다. 총학생회가 학내 모든 학생의 대표이듯, 총여학생회는 학내 모든 여학생의 대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이며 대학 역시 그 사회의 일부다. 따라서 학내의 여학생을 남성중심사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학생회를 만들었던 것이 총여학생회의 시작이다. 2018년 서울 시내 대학 중에서 유일하게 총여를 유지하고 있던 동국대학교는 최근 학생 총투표를 통해 총여의 폐지라는 결과를 맞이했다. 다행히도 연세대학교에서 총여를 개편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현재 논의 중에 있다.

ㄴ 동국대학교 여학생총회 성사단 '여쏘공'의 로고

  학내 총여학생회가 뜨거운 감자 마냥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총여학생회가 남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으면서, 학생 모두가 내는 - 납부 여부는 본인의 몫이지만 - 학생회비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총여의 존폐에 대해 논란이 되는 이유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대체 왜 총여학생회는 학생회비로 운영되는가?" 이 질문의 본질은 결국 여성이 소수자, 즉 사회적 약자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학내의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학생회비를 사용하는 건 '복지'의 개념이다. 모든 사람은 선택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쉽게 말해 성별, 장애, 성정체성, 재산과 같은 것으로 인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학생이 동등한 학교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면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을 위해 강의를 타이핑하는 대필 도우미를 구한다던가,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와 같은 제도적 대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언뜻 보기에는 아닌 것 같을지 몰라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숨쉬듯이, 어디서든 존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공학 중에 안 터진 대학이 없다는 '단톡방 성희롱' 사건부터, 교수님과 여학생 사이에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행 사건, OT나 새터, MT, 동아리에서 일어나는 선후배 간 성범죄, 학내 화장실 불법촬영 사례까지 학내에서 드러나는 여성 혐오적 범죄는 셀 수 없다. 범죄가 아니더라도 여성 혐오적 발언과 차별은 학내에 만연하다.


  총여학생회가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아직도 맨 얼굴의 여학우를 보며 "오늘 화장 안 했어?"라고 묻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취업과 연관하여 교수님께 학부생 추천을 받을 때 기업들이 남학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학생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의 외모 순위를 매기고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학내에서 이뤄진 불법촬영물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공유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수업 중에 미투가 무서워 무슨 말을 못하겠다고 농담을 하는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외치는 대자보를 그저 찢어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여성이, 여성이기에 차별받고 있기 때문이다.


  학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여성들이, 여성이기에 마주하는 차별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학생회라는 자치기구를 설립했다면 학생회비에서 그 자치기구에 운영 자금을 배분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하지 않다. 또한 학생회의 존폐는 그 구성원이 결정하는 것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대다수의 대학에서는 성별을 막론한 학생총투표를 통해 존폐를 결정했고,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다수결로 지우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다수결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분명 동시에 다수결이라는 제도가 소수의 의견을 억압할 수 있다는 결함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배웠을 것이다. 이 때의 소수는 단순히 수가 적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여성이 약자가 아니게 된다면 그때 총여학생회는 존재할 명분을 잃는다. 대학에서 숱한 성범죄 피해자가 나오지 않고, 어떤 신입생도 단톡방에서 성희롱을 당하지 않으며, 아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축제 때 꽃이 되지 않을 때, 그래서 그 누구도 총여학생회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그때 총여학생회는 사라질 것이다.

  

  총여학생회는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기구다.

  그리고 나는, 누구보다도 총여학생회가 사라지기를 바라며, 그렇기에 현재의 대학들에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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