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기 위한 재료들

쌓인 슬픔 소모

by 돌멩이

나는 잔잔한 슬픔은 감지하지 못한다.

따라서 내가 느낄 즈음에는 이미 쌓이고 쌓여

머리가 꽉 막혀 있을 때이다.


이때는 내 방 안으로 들어가 여러 재료들로 억지로라도 터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 가볍게 긁은 말에 피가 철철 흐르는 듯 감정을 쏟아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나는 "슬픈 드라마 모음", "우울할 때 듣는 노래", "눈물 나는 영상" 등을 검색해 울 재료를 찾아 나선다.

나도 모르게 내 맘을 툭 건드려 줄 정도의 새로운 재료가 나올 때까지 돌아다닌다.


그 재료는 드라마가 될 수도, 음악이 될 수도 있다.

한 때, 자주 도움이 되었던 재료는 '나의 사춘기에게'였다.


"나는 한때 내가 이 세상에

사라지길 바랬어 온 세상이

너무나 캄캄해 매일 방을 울던 날"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의 내가 정확히 저 상태였다는 것을 노래를 들으며 알았던 것 같다.

저 노래를 듣기 전에 내가 왜 이런지 나도 모르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


내게 있어 재료들은 내가 모르는 내 상태와 감정을 일깨워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내가 알아서 나를 깨닫는 것보다,

남의 어떤 말에 반응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훨씬 편하기에.

내가 알아서 감정을 끌어올려 표출하는 것보다,

남의 말과 감정에 반응하는 것이 익숙하기에.


나만 이런 건지 모두가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료들을 찾을 때, 생각보다 많은 댓글과 검색어가 나오기에 비슷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그렇다면 다들 제때 재료를 찾아 제때 표현하길.

쌓아두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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