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로 건너가는 법
꾸준히 남는 자가 이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가 남는다. 간단한 원칙인데도 지키기 어렵다. 급하게 슬로건이 필요했고 짧은 시간 안에 썼다. 23개를 냈는데 걸린 건 하나. 또 비교하기 시작했다. 늦은 점심을 먹었다. 밥 먹을 자격이 없다 느꼈다. 슬로건도 못 쓰는 카피. 영상에 대한 이해도 없는 카피. 1년 차가 되면 잘할 수 있을까. 밥값을 할 수 있을까.
어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나팜을 쪼개 먹는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상담을 다시 시작했다. 아직도 마주 앉아 얘기하는 게 부담스럽다.
박민철 시디님의 <내 일로 건너가는 법>을 읽고 있다. 코바코에서 강의도 들었었는데 80명이 넘는 사람들의 카피를 첨삭해 주시는 모습이 멋졌다. 책임감 강한 사람. 의외로 걱정은 많은 사람. 시디를 달면서 좋은 팀장이란 무엇인지 고민한 책이다.
사원이던 시절, 박웅현 대표님께서 경쟁 PT 기획서를 맡기셨다 한다. 열심히 써갔는데, 본인 것은 반영이 되지 않고 기획서가 계속 달라져있더란다. 그래도 대표님은 자신감을 잃지 않게 북돋아주셨다.
“내가 있으니까,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한번 해봐.”
- <내 일로 건너가는 법>
이 말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회의 분위기가 살벌했다. 마지막 순서여서 그런지, 나는 말할 틈도 없이 피피티를 넘기기만 했다. 23페이지 중 22페이지가 오답이었다. 별다른 피드백도 없이, 그중 하나만 살렸다. 회사는 대학이 아니라는 걸 안다. 팀장님은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도. 치열하게 바쁜 이곳에서 따뜻한 말 하나 건네기 어렵다는 걸 알지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 느껴진다. 다음, 이란 말 말고 이게 왜 부족한지 얘기해 주었으면 이런 감정은 들지 않았을 텐데.
팀은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다. 위축된다. 불편하다. 억지로 올린 입꼬리가 파들거린다. 마스크가 있어 다행이다. 상담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까. 나는 내 몫을 할 수 있을까, 유난히 울적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