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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Mar 28. 2023

무조건, 사랑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했다. 경주마처럼 공부라는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생각해 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예민했고 화가 났다. 여유가 없었다. 고양이는 시야각이 200도라고 한다. 고양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내 곁엔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던 친구들이 있었다. 우리는 친구이자 경쟁자였고, 학교는 정치판이었지만 그들이 있어 행복했다.


내 목표는 엄마가 되는 거다. 영어로 말하면 거리낌 없어진다. 전화영어를 하며 내 가치관, 내 생각, 내 목표에 대해 알아간다.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 물었을 때, 나는 엄마가 되고 싶다 했다. 서준맘처럼 아이가 떼는 한 걸음 한 걸음을 함께하는, 혼자 사는 세상 조금이라도 덜 외롭게 해주는 엄마 말이다.


야리를 보고 문득 눈물이 났다. 나무가 먼저 그렁그렁한 눈을 보였고, 그다음은 내 차례였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있는 그대로 소중한 생명체에 대한 경이, 그리고 우리보다 짧은 시간을 가진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나와 나무가 생명을 야리에게 떼어 주어, 우리보다 조금이라도 오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야리는 소중한 숨소리를 내며 잔다. 팝콘을 뺏어 먹다, 창밖을 구경하다, 또 잔다.

엄마 강제 다이어트 시키는 야리
야리 입에 넣었던 거 빼앗아먹기



나무 목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받는 거다. 야리 구슬 같은 눈동자를 보면 저절로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게 된다. 렘수면 단계에 접어들어 뒤집어지는 눈동자도 귀엽고, 색색 숨소리도 귀엽고, 꼬리를 치켜들고 힘껏 힘주는 얼굴도 귀엽다. 사랑을 주는 건 행복한 일이다. 야리를 아들, 꿍이, 꿍돌이, 얄꿍돌이, 김야리, 감야리 등 수십 개 애칭으로 부르면서, 나무를 잃었다 만나는 사람처럼 끌어안으면서 이들을 위해 태어났고, 이들을 위해 산다는 생각을 한다.


나무와 낭독하며 울컥했던 시가 떠오른다. 안희연 시인의 '면벽의 유령'이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리십시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늙은 개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버려져야 했다.

(중략)

아주 잠깐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늙은 개를 쓰다듬으며

나는 흰 벽에 빛이 가득한 창문을 그렸다
너를 잃어야 하는 천국이라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No man is an island.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독이 편했던 나,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나. 나무와 야리를 통해, 그들 덕분에 달라진다. 사랑을 전하는 다른 말을 고민한다. 나는 솟구치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내뱉는다. 우리 결혼하자. 나무는 나에게만 보여주는 웃음을 지으며 그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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