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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Dec 10. 2022

내가 사랑한 사람들은 너무 빨리

사라진다


Nov 04. 2021



이모에게 문자가 왔다. 이번 달은 면회 언제로 잡을까. 아무 때나 괜찮아. 어차피 이틀밖에 안 되니까. 이모는 25일로 잡는다고 했다.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신다. 중학교는 병원에서 3분 거리였다. 도서관에 갔다가 가기도 했다. 할머니는 밥시간이 되면 날 먹이느라 바쁘다. 할머니 나 괜찮아 먹고 왔어. 난처하게 터진 홍시를 들고 있다 결국 대야에 버렸던 기억이 난다.


이모와 나는 백신 접종자다. 그래도 대면 면회는 안 된다. 하얀 유리창을 두고 할머니를 마주한다. 할머니는 마스크 없이, 난 마스크 쓰고. 스파이더맨마냥 딱 붙어 얘기한다. 입김이 서렸다 사라진다. 할머니 할머니 여섯 시 내 고향 봤어? 세 번 정도 얘기하면 여섯 시 내 고향? 할머니가 반응한다. 수화기가 없으면 무성 영화가 된다. 내 할머니.


예전에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할머니는 학생이 학교에 가기 싫으면 어쩌냐고 노발대발하셨다. 나 때는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 할머니는 30년대생이시다. 일본어도 할 줄 아는 우리 할머니.


친할머니는 온화하고 다정했다. 할머니가 제일 크게 소리 낸 날은 내가 짜장면집에서 방울토마토를 씹다 할머니 옷에 다 튀겼을 때다. 거기는 후식으로 방울토마토와 고구마 맛탕을 줬다.


학교 마치고 친구와 그네 탄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돌계단을 타고 내려오셨다. 나는 이제 갈게! 하며 할머니에게 갔다. 그 친구는 대학교 1학년 필수 교양 수업에서 팀원으로 만났다. 굉장한 우연이다. 나랑 그네 탄 기억나냐고 하니 모르는 눈치다. 난 그때가 아직 생생한데.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너무 빨리 나를 떠난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도. 할머니는 내게 조건 없는 애정을 주셨다. 데면데면하게 구는 손녀인데도 친구들께 자랑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가 찢어준 김치는 항상 맛있었다. 제사 지내고 먹는 탕국도. 짭짤한 생선도.


엄마는 내 할머니를 싫어했다. 엄마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쏟았어야 했다. 그걸 몰랐다. 이미 떠난 할머니와 이전부터 떠날 채비를 하던 할머니. 내가 사랑한 사람은 너무 빨리 떠난다.



다 괜찮으니까 나는 잊어버리지 마. 할머니가 제일 사랑한 사람이잖아. 어릴 때도 할머니가 울면 나도 울었다. 할머니와 있으면 좋았다. 나를 두렵게 하지 않으면 다 좋았다. 스무 살 때 겪은 상실은 눈에 큰 손톱자국을 남겼다. 죄책감과 슬픔과 분노와 그리움. 할머니는 이 말을 들으면 슬퍼할 테지만, 한 부분이 흐릿한 채 보는 세상도 괜찮아.


할머니는 너무 높이 있다. 아빠도 사다리를 가져와야 한다. 할머니는 나무를 아주 좋아하셨을 거다. 우리 아빠랑 닮았으니까. 할머니는 소원 같은 거 안 들어줘도 돼. 나 안 돌봐줘도 돼. 그냥 나를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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