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도, 열등감도, 불안도 다 내 안에 있는 거더라.
남자친구를 사귀며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나는 그처럼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8살에 대학을 들어간 그는 23년에 석사까지 마쳤고, 나를 만날 당시엔 직장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2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동안 한국에서 일을 했고, 미국에 와서는 전전긍긍하며 산다. 모았던 돈이나 주식은 이미 없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낸다. 지금까지 해왔던 마케팅과는 완전히 다른 직종으로 전환하려고 해 내년에 다시 학교를 들어간다. 최소 4년 뒤에야 얻을 수 있는 자격증. 과학엔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난 생물, 화학, 미적, 통계를 미국에서 새로 배운다.
한 주에 한 번은 꼭 바다에 가는 우리. 그와 진지하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난 그에게 물었다. I'm still building things. Is that okay? 그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목표를 향해 간다면 어느 단계에 있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에게 더 자랑스러운 연인이 되고 싶어서 아직까지도 안달을 낸다. 생각해 보면 그는 내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번듯한 직업이 없어서, 영주권이 없어서 싫다고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탓에 몇 번을 되물어도 짜증 한 번 낸 적 없다. 너는 한국에 있는 게 아니라고, 몇 살에 무엇을 성취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얘기했다. 늦은 게 아니라고, 가고 있으면 된 거 아니냐고, 노력하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건 너무 못된 거 아니냐고 말하던 그.
그가 말했듯 나는 계획이 있다. 내년에 학교를 들어가 2년 뒤 자격증을 따고, 다시 2년을 공부해 최종 목표인 자격증을 따는 것. 2-3년 근무하다 대학원에 가 다시 자격증을 따고 내가 원할 때까지 일하는 것. 지금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비는 시간이 많아 시간을 버리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한 걸 안다. 집 치우고 요리하고 고양이들 놀아주고 운동하는 기본적인 습관이 잘 잡혀 있지 않아, 쌓여 있는 빨래나 어지러운 집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받는 걸 안다.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다. 집 치우고 빨래하고 요리하고 돈 아끼고 고양이들도 잘 돌보는 것. 루틴을 만드는 것. 내가 나에게 만족하지 않으니 여러 가지 불안이 생긴다. 나를 가꾸기 시작하면 그와의 관계에 덜 의존하게 될 것이다. 항상 당당한 그처럼, 딱히 아쉽지 않은 그처럼, 나도 내 일에 집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