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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Oct 12. 2022

할머니가 있는 세상

다음 달에 봐요. 

오랜만에 면회를 갔다. 10월엔 가지 못했으니, 두 달만에 보는 얼굴이다. 면회 전엔 항상 조마조마하다. 우리 할머니 얼굴이 반쪽이 됐으면 어떡하지, 더 나빠져 눈물이 나면 어떡하지, 할머니가 힘들면 어떡하지.


예기치 못한 코로나 검사를 하고 면회실에 뛰어올라갔더니 다른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가 오시기까지 또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또 잘랐기에 간병인 분들도 긴가민가 하셨는데, 우리 할머니 나 알지 못하면 어쩌지. 할머니는 다행히도 알아보셨다. 살도 붙었고 무엇보다 말을 하셨다. 할머니를 웃기고자 일부러 과장해 행동했다. 할머니는 깔깔 웃으셨다.


할머니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와도 거의 연을 끊은 엄마는 코로나 이후엔 방문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거듭 바쁘지 않냐고 물었다. 우린 하나도 안 바쁜데. 면회는 15분 만에 끝났다. 아쉬워 할머니를 꼬옥 껴안았다. 내 목과 어깨에 체취를 묻히는 우리 야리처럼 나를 지탱했다. 짧은 시간을 쪼개 사랑한다고 백번 외쳤다.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껴안자 이만 헤어질 시간이라는 듯, 어깨를 팡팡 두드렸다. 내가 어릴 적 할머니와 똑같구나.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어른이 맞구나. 엄마가 밉다고 하면 예끼! 엄마를 미워하면 어떡해! 했던.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펄쩍 뛰시며 나땐 학교에 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 했던. 



마음 한켠에 두려움이 있다. 반짝 나아지셨다 다시 안 좋아지신다면. 항상 걱정을 만들어한다. 정규직이 되지 않을까, 이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까. 그만 걱정해야지, 그 상황이 오면 해결하면 되지, 머리로는 아는데도 갈팡질팡하며 웃어도 완전히 웃진 못한다. 그래도, 할머니와 있는 동안 가슴 깊이 행복했다. 할머니 손 냄새를 서울역에서도 킁킁 맡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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