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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Nov 14. 2022

매달, 그리움

20분, 할머니

연차를 냈다. 할머니를 보러 간다. 서울역은 가혹하다. 공복에 지하철만 타면 시작되는 어지럼증에 서울역에 내리면 걸을 수 없다. 꾹 참고 내딛으면 시야가 하얗게 점멸된다. 주저앉아 숨을 고르길 다섯 번, 1분 차이로 기차를 탈 수 있었다.


할머니는 머리가 더 자라 무성한 풀 같았다. 내가 숏컷에 더 자른 덕분에 “ㅇㅇ이 아닌 것 같다.”라는 소리가 첫마디이긴 했지만 나는 그 말마저 반가웠다. 할머니도 말을 잃었을 때가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 알아듣고 말을 하셔 너무 고맙다. 할머니는 엄마와 왜 싸웠냐 물었다. 엄마가 말을 못나게 해서. 그럼 네가 참아야지. 할머니, 나도 많이 참았어. 할머니 많이 아프면 병원 가지, 마음이 아파도 병원 가는 거야. 나는 못 참아서 약 먹고 있어, 하니 할머니도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머니는 사실 나보단 딸인 엄마를 걱정한다. 할머니를 이해한다. 세상에서 할머니가 제일 좋은 나는 그리 서운하지 않았다. 조금은 그랬더라도 말이다.


보고 싶다는 말에 할머니는 나를 꽉 껴안으며 “나도 보고 싶었어.” 하셨다. 그 말에 눈물이 터져 손으로 얼굴을 가리자 할머니는 “왜 울어. 네가 울면 할머니도 눈물 나.” 하셨다. 한 번 터진 울음은 잘 멈추지 않는다. 겨우 화제를 돌렸다. 할머니 나 고양이 키워. 남자 친구도 있어. 몇 년 안에 결혼할 거야. 할머니는 끝까지 나무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셨지만, 말을 했다는 것이 뿌듯했다. 할머니는 갑자기 나무의 사는 지역과 출신 대학을 캐물으시더니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자 그럼 됐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갑자기 화장실이 어디냐고, 가고 싶다고 하셨다. 당황한 나는 보호사님에게 전달했지만 “매일 하는 말씀”이라는 말에 다시 들어갔다. 할머니는 계속 화장실을 찾으셨고 데스크에서는 낙상 위험으로 화장실은 따로 쓰지 않는다고 하셨다.


할머니에게 화장실에 누가 있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화장실에서 누가 죽었다고? 라 답해 웃기면서 섬뜩했다. 할머니에게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된다. 어릴 땐 엄마가 시켜서, 지금은 할머니를 위해. 그것 조차 나는 너무 죄스럽다.


한바탕 소동 이후 시간이 되었다며 갑자기 할머니 휠체어를 끌고 나가시는 바람에 급하게 사랑한다고 다음 달에 오겠다 했다. 할머니 얼굴에 실망이 어렸고 나는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비상계단에서 한참을 울었다. 화장실을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음에도 화장실을 찾는 할머니가 슬펐다. 화장실 가는 줄 알고 “거기 기다리고 있어.”라고 한 할머니가 이별을 깨닫고 낙심하는 표정이 슬펐다. 20분 허락된 면회를 한 달 기다리고, 사진 한 번 못 찍었다는 생각에 슬펐다.


요양병원에서 눈물실을 마련하면 좋겠다. 환자를 찾은 보호자가 눈물을 쏟을 수 있는 공간. 비상계단, 화장실 칸 안에서 우는 울음은 처량했고, 이 슬픔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또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나는 할머니를 제외한 외가와의 인연을 끊었고, 결혼식에도 초대하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살려고 한 결정에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면 슬픔보단 분노와 연민을 느낀다. 나무와 야리, 미래의 내 아이에게 엄마는 그저 독이다. 옳은 결정이고 내 가족을 지키는 결정이었음에도 가끔은 마음에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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