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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멩리 Nov 17. 2022

원망과 절망과 혐오와 한 송이의 사랑

높지도 낮지도 않은 기분을 유지했다. 균열이 생기기 전까지는. 자살사고가 계속된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과 선생님과 가족들이 떠오른다. 어디에 구조 신호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나무는 내 곁에 있지만 이미 내 발은 진흙에 깊이 빠져 버렸다.


정규직 전환 여부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할머니가 사무치도록 그립다. 한평생 존중과 지지를 받아보지 못했다. 시디님은 엄마를 연상시킨다. 나이대가 비슷하고 속을 알 수 없어서. 시디님이 내 뒤에 위치할 때면 모공이 송연하다. 엄마처럼 금방이라도 내 뒤통수를 후려칠 것 같다. 아플 정도로 긴장하게 된다.


아이데이션은 부담스럽고 나를 망가뜨린 사람들에겐 분노가 치민다. 왜 혼자 아픔을 감당해야만 할까. 왜 나는 모진 사람이 될까. 소송을 걸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정신과 상담 기록이 증거가 될까. 내가 가진 첫 기억은 엄마가 등을 돌리고 있는 장면이다. 유치원 공개수업에서 발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는 나를 무시하고 현관에 홀로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무릎 꿇고 빌면서 비참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겐 수천 개의 칼날이 꽂혀 있는데 여유롭게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가 힘들다. 버겁다. 이터널 선샤인처럼 기억을 지우면 나으려나. 가끔은 내가 가진 힘과 강인함에 밝은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날은 시궁창으로 빠진다.


시디님은 밝은 내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한다. 정확히는 “밝으니까 좋다.” 고 하셨다. 내 고통은 영구적인데 사람들은 내 웃음에 안도한다. 나는 괜찮은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원망과 혐오와 절망과 한 송이의 사랑이 있는 곳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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