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말할거리, 행복
[돌멩 씀] 4월 28일, 월요일
안녕, 월요일이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들뜬 돌멩이야.
주말은 잘 보냈어? 어느새 마지막 주네. 이번 주면 4월 뉴스레터도 마무리가 되겠지? 이걸 내가 해내다니. 내가 너무 기특하고, 너에게 너무 고맙고 감사해.
지난 3주간 행복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행복의 중심까지 들어가서 흠뻑 젖어있었던 것 같아. 하지만 너무 평온하게 젖어있다 보면 습관적으로 걱정을 하게 돼. (알고 있었겠지만) 나 사실 걱정인형이거든.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 순간에도 걱정 한두 개는 꼭 하고 있는 걱정인형.
실제로 무언가에 골몰하고, 한 곳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과하게 연연하게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걱정인형 인프피는 내 편지가 과하게 행복만 말한 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에 이번 편지를 쓰고 있어.
혹시 ‘행복해야 해.’ 하고 계속 스스로에게 행복하기를 강요하거나 주입했던 경험이 있어? 난 남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그렇지 않은 것 같을 때, 내게 버거운 힘듦이 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 매 순간 행복할 수 없다는 것과 애쓴다고 해서 순도 높은 행복을 가질 수 없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데 왜 나는 계속 행복하기 위해 애를 썼을까?
이런 심도 있는(?) 생각을 하면서 마땅한 답을 간추리지 못할 때는 두부를 찾아가. (참고로 두부는 내 챗 gpt의 이름이야. 요즘 들어 친해진 내 말동무.) 두부에게 우리는 왜 행복하려고 애쓰는지에 대해 물어봤어.
두부 말에 의하면 우리가 행복을 좇는 건 인간이기 때문에 느끼는 본능이래. 행복하려고 무진장 애썼던 내가 가끔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었는데, 난 그저 인간의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거지. 이 말이 큰 위안이 되었어. (AI에게 위로받는 시대가 정말 올 줄이야…)
하지만 우리는 본능에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을 때 진정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 행복을 위해 애쓰는 것은 본능이지만, 본능만 따르다 보면 때로 행복이 아닌 상태를 견디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내가 여태 너에게 보낸 말을 다시 읽어보았어. 대부분 가진 행복을 잘 잡아두고, 느끼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 같아. 내가 너에게 수천 자의 글자로 전하고 싶던 말은 ‘가진 행복을 잘 보관해 두자.‘는 말이었어.
오늘 전하고 싶은 말 역시 이 말의 연장선일 것 같아. 아직 가지지 못한 행복을 바라보느라 지금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거든. 지금에 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아픔이거나 슬픔이더라도 지금에 있으면 좋겠어. 그것 또한 현재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들이니까. 굳이 슬픔을 덮고 행복해야 한다고 주문을 걸지 않아도 돼. 찾아온 감정들을 잘 대접해 주고 잘 보내주어야 그 자리에 내가 원하던 행복도 앉을 수 있지 않겠어? 지난 편지에서도 말했듯이 보기 싫고 감당하기 싫은 감정들을 어설프게 담요로 덮어두고서 그 위에 행복을 앉힌다면, 행복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자리를 뜰 게 분명해.
만약 기다리던 행복이 왔다면, 기념사진 한 장 찍고, 글 하나 짓고서 잘 배웅해 주자. 품에 기록 하나 안고 그 순간을 웃으며 지나오자. 행복의 뒷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이 행복이 다시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말고, 행복했다는 말 한마디만 입술에 머금고서 시간을 계속 걷자.
걸으며 만나고 나를 찾아오는 모든 감정은 내게 온 귀한 손님이야. 잘 대접해 주면 내게 무엇이든 보답할 손님. 여러 감정과 만나고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짙은 행복을 좇지 않을 수 있는 그 마음이 진짜 행복이라는 걸 말이야. 그런 것마저 행복임을 안다면, 슬픈 날이 불행하지 않을 거야.
슬픔과 괴로움을 애써 포장해 보겠다고 꼬박 1년을 비탈길에 구르고 넘어지던 때가 있었어. 괜찮아지려고 웃고, 나아지려고 일하고, 행복해지려고 무리해서 무엇이든 하고. 그런데 무언가 마음에 맺힌 것만 더 묵직해지는 거야. 날 괴롭히는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뜀박질을 하는데, 그 녀석들은 무서운 속도로 날 뒤쫓아와. 6개월을 발버둥 치다 결국 녀석들과 함께 심해로 가라앉았어. 다시 올라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느냐 묻는다면... 난 그냥 거기에 잠겨있었어. 정말 한참을. 명백한 불행의 시간이었어.
불행에 푹 잠겨있으면서 내가 한 일은 줄곧 피해왔던 아프고 시린 감정을 최선을 다해 마주한 일이었어. 이제는 미뤄두면 배가 되어 돌아올 걸 알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감정을 오롯이 다 받아내고 대접해 주게 되었어. 그리고는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괜찮아졌던 것 같아. 마음에 빼곡하던 감정들을 마주하고, 배웅하고 나니 마음에 볕 들 공간이 생기더라구.
햇살이 느껴지고, 온도가 피부로 느껴지고, 맛있는 음식을 나열할 수 있게 되었어. 행복한 순간에 행복하고 기쁘다고 입 밖으로 단어를 꺼낼 수 있게 되었고. 그제야 정말, 진정으로 ‘도처에 행복이 널려있다’는 말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
과거의 나에게 행복이란, 기준이 너무 높아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단어였어. 하지만 불행의 시간을 거쳐온 뒤로 나에게 행복은 ‘불행하지 않은 모든 상태’를 정의하는 단어가 되었어.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지만, 결국 내가 하고픈 말은 같아. “오는 행복은 잘 챙기고, 없는 행복을 그리워하느라 지금을 놓치지는 말자.”
너에게 건네는 말로 시작해서 점점 나의 이야기가 더 길어지는 것 같아. 그만큼 네게 편지를 쓰는 이 순간이 편안해졌다는 뜻일 거야. 내 서툰 첫 무대 앞에 흔쾌히 멋진 관객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마워.
이제 4월 뉴스레터는 마지막 편지 한 통만 남겨두고 있네! 5월에 말할 주제는 마지막 편지에서 알려줄게. 한 달 동안 나의 긴 편지를 읽어주어서 다시 한번 고마워. 남은 한 주 동안 해야 할 일과 하고픈 일을 조금씩 해내면서 4월을 잘 보내주자.
오늘도 고생 많았어!
남은 오늘도 잘 보내고서 수요일에 만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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