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말할거리, 나의 우울
[돌멩 씀] 5월 7일 수요일
안녕, 5월 첫 편지를 쓰는 돌멩이야.
한 달 동안 써 봤는데도 왜 이렇게 긴장될까? 주제가 바뀌어서 그런 걸까? 무진장 설레고 떨려. 이제 막 두 번째 언덕인데 너무 무거운 주제를 골랐나 싶기도 하지만, 또 잘 해내면 그만큼 뿌듯할 것 같아.
생각보다 빠르게 묵직한 주제를 꺼내게 된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나는 절대 밝은 면만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야. 행복을 좋아하지만, 행복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지. 좋은 면만 보여주기보다는 다양한 면이 모여 내가 되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 이번 달에 꺼낸 주제는 내 3n 년 삶의 가장 중심에 있던 우울이라는 감정을 덜어낼 수 있었던 도움에 대한 이야기야. 아무래도 앞으로 말할 선생님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말하고 싶어. 조금 길더라도 가볍고 즐겁게 들어주면 좋겠다!
때는 2019년(웅장). 그냥저냥 삐걱대더라도 잘 구르던 삶이 갑작스레 강하게 휘청거렸어. 가까운 곳에 있던 불안정한 사람이 나를 휘젓고 있었고, 그런 시기에 코로나까지 겹쳐버린 거야. 당시 나는 대구에 살고 있었어. 종교단체에서 급속도로 퍼진 코로나 때문에 대구 전체에 비상이 떨어졌지. 퇴사한 후라서 외출할 일도 없었고, 외출을 할 수도 없었어.
대구를 폐쇄하니마니 하는 뉴스와 서로 불안정한 사람 간의 날이 선 대화, 그리고 밤마다 꾸는 악몽. 하루에 두 시간도 채 못 자며 2주가량을 보냈어. 몸은 급격하게 상했고, 염증이 온몸에 퍼져서 항생제를 한 달 내내 먹어야 했어. 이성이고 감정이고 모두 마비된 상태였어. 악몽을 꾸더라도 잠은 자야 몸이 나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장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로 찾아갔어.
정신과에 들어서는데 사람이 정말 많더라.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싶어서 씁쓸하면서도 안심이 되었어. 제법 오래 대기한 뒤에 드디어 진료실로 들어갔어. Y 선생님과의 첫 대면이었어. 사실 지금은 너무나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에 임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었던 건 아니야. 당시 나는 분명 객관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지만 그만큼 주관적인 위로도 필요한 상태였거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유난스러운 것도 아니고, 지금 내 상태는 당연히 그럴만한 거라는 말이 너무나 필요했어.
그렇지만 정신과는 치료를 위한 병원이지 상담소가 아니라서 원하던 위로는 받을 수 없었지. 중증의 우울, 불안증이라는 진단과 생소한 약이 든 봉투가 병원에서 얻은 전부였어. 첫 진료부터 나는 망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게 됐는지 궁금하지? (궁금해해주라) 이듬해에 어쩌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 1년 정도 살게 된 적이 있거든. 대구에서 서울은 너무 먼 거리라 당연히 정신과도 옮겼어야 했어. 서울에서 나는 새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지. 새로 만난 선생님은 너무 따뜻한 분이었어. 내가 처음 정신과에 가서 만나고 싶던 그런 선생님이었어. 드디어 나와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났다고 생각했어. 약 3개월 동안은 그랬던 것 같아.
3개월이 지나고서는 진료를 받고 와도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어. 위로가 마음 바깥에서 겉도는 느낌 같기도 했고, 겉만 따뜻하게 덥혀진 차가운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같기도 했어. 거기에 진료를 한 번씩 받고 올 때마다 내 손에 쏟아지는 약이 많아지면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어. 약을 한주먹을 먹어도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서울에서의 1년을 어영부영 마치고 다시 대구로 내려오게 되면서 원래 진료받던 정신과에 갈 수 있었어. 의사 소견서를 보신 Y 선생님이 화들짝 놀라셨어.
"약이… 왜 이렇게 많아졌어요?"
나는 멋쩍게 웃고 말았어. 그러게요.
"우선 약부터 줄입시다. 이건 지금 필요한 약이 아니에요."
처음 만났을 땐 딱딱하다 느꼈던 Y 선생님의 말이 너무 든든한 거 있지.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약 5년이라는 세월 동안 선생님은 언제나 같은 온도로 내 우울을 보살펴주고 계셨던 것 같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내게 필요한 만큼만 주시면서. 이후로는 Y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으며 상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어. 한 달에 한 번 정신과에 방문하는 그날이 내겐 나만의 대나무숲이 열리는 날이었지.
너무 힘이 드는 날에는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게 돼. 사실 정신과에 처음 방문하던 날, 내게 필요한 것은 병원에서 모두 받아왔었어. 내가 잘 수 있게 도와줄 약, 명확한 진단. 병원에서 그 이상의 것을 주었어도 나는 부족하다고 여겼을 것 같기도 해. 서울 선생님이 위로를 주었어도 나는 마음이 뻥 뚫린 듯이 허전했으니까 말이야.
이제는 알겠어. 위로는 내가 나에게 주어야 할 것이었는데, 할 줄을 모르니 타인에게 위탁했었구나. 내가 아닌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때까지 잠시 기댈 곳을 내어줄 뿐이구나.
Y 선생님이 오래 나를 지켜봐 주신 덕분에 난 이제 내 우울과 싸우지 않고 서로 돌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 Y 선생님과의 만남 이야기는 여기까지야. 다음 편지에서부터 Y 선생님과 나누던 대화 중에 내가 아직도 오래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본격으로 꺼내볼게. 긴 편지였는데 여기까지 읽어주어서 고마워.
연휴가 지나고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어. 오래 쉬고 나면 항상 다시 시작하게 되는 이 시점이 힘겹다니까! (대충 일하기 싫다는 뜻) 일상이 매끄럽게 잘 돌아갈 때까지 또 힘내보자.
오늘도 고생 많았어. 주말 잘 보내구 다음주 월요일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