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 씀] 집에 돌돌이 있어?

5월의 말할거리, 나의 우울

by 아름

[돌멩 씀] 5월 12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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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만성피로의 돌멩이야.


요즘 왜 이렇게 밤에 잠을 자기가 싫은지 모르겠어. 밤이면 몸은 차분해지지만, 머릿속은 축제처럼 떠들썩해지거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가 샘솟아. 그래서 자꾸 밤에 일을 벌이다 보니 밤이 짧아지는 것 같아. 하지만 몸이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지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네. 다시 수면시간 7시간 채우기를 목표로 침대에 눕는 시간을 당기고 있어. (잘 안되기는 하지만…)


지난번 Y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이야기는 어땠을까? 힘들고 아팠던 때의 내가 아니라 지금의 나로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마음을 다해 다듬어 보냈거든. 부디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다면 좋겠어. 나는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고, 이제 스스로 걸을 힘도 있으니 많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응원해 주어서 언제나 고맙다는 말을 전할게.


오늘은 Y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이야기에 이어서 내가 처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선생님의 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구. 내가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어. 우울과 불안을 함께 겪으니 감정 기복이 말도 못 하게 심해졌었던 때였지. 타인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작은 일 하나에 행복과 불행을 순식간에 오갈 정도로 감정이 요동쳤거든. 감정 소모가 아니라 내 생명을 소모하는 기분이었어. 수도꼭지보다 조금 더 많은 눈물을 쏟아냈던 때에 선생님과 나눈 대화야.



(멩-돌멩, Y-Y선생님)

멩 :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서 힘이 들어요. 좋을 땐 너무 좋은데, 불안할 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안해요.

Y : 무슨 일이 있었어요?

멩 : 아뇨. 별일은 없는데 그래요. 원래 감정 기복이 심하긴 했는데, 이렇게 감당하기 힘든 정도는 처음이에요.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Y : 그럼요.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는 그 간극을 줄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너무 좋아서 높이 치솟는 것도 위험하고, 너무 불안하고 우울한 것도 위험하니까.


선생님 말씀에 '이미 가파른 롤러코스터에 타버린 내가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의심하고 고민했어.


Y : 나아지려고 너무 무리하지 말고, 우리 목표는 저공비행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너무 하늘 높이 치솟지 않고, 너무 바닥에 곤두박질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요. 너무 축 가라앉으면 몸을 조금 움직여봐요.

멩 : 너무 우울하면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Y : 퇴사했다고 했죠? 집에선 주로 뭘 해요?

멩 :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집안일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Y : 굉장한 걸 하지 않아도 돼요. 기분이 가라앉는 것 같으면 ‘나 지금 좀 우울하네‘ 하고 자리에서 앉아서 돌돌이로 머리카락이라도 떼면 돼요. 대청소 같은 거 아니고 그냥 그 정도면 돼요.



그거면 된다고? 그렇게 쉽게 괜찮아질 리가 없잖아요, 선생님. (이라고 속으로 말하는 소심쟁이) 의심과 불만이 가득한 채 알겠다고 대답하고서 병원을 나섰어.


바깥으로 나서니 완연한 봄이 보였어. 바람에 꽃잎이 흩날리는 데 그게 얼마나 서글프게 느껴지던지. 병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고됐어. 침대에 누워도 긴 밤 동안 꾸었던 악몽이 떠오르고, 책상에 앉아도 주변에 느껴지는 공기가 너무 차게 느껴졌어. 나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장 우울에 빠져야 했고, 의자에 한참을 늘어져 있었어. 그러다 돌돌이가 눈에 들어왔어. '다음 주에 가면 이런 걸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해야지.'하는 오기로 돌돌이를 들었어.


우선 침대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떼어냈지. 금방 끝나더라고. 접착면이 생각보다 말끔하니까 아까운 거야. 그러다 앉아있던 의자가 보였지. 방석도 비뚤어져있고, 책상도 어수선하더라고. 한숨을 푹 내쉬고는 터덜터덜 책상으로 가서 정리를 시작했어. 한 30분 걸렸나? 돌돌이도 충분히 일했으니, 한 꺼풀 떼어내서 휴지통에 버리고는 다시 침대에 털썩 걸터앉았어.


이런 건 소용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마음에 초점을 맞췄는데, ‘무(無)’가 느껴졌어. 우울도 무엇도 없이 조금 허무하기도 한 그 마음. 그리고 곧 삐뚜름한 마음이 들어섰지.


‘이게 왜 돼?’


그게 진짜 내게 유효한 방법이었다는 게 억울했어. 처음엔 그랬어. 아마 내가 바라는 위로를 해주지 않아서 나 혼자 선생님에게 토라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 다음 진료까지 일주일. 그 시간 동안 다른 건 못해도 이불 정리는 꼭 했어. 그것만 해도 땅속까지 파고들 만큼의 우울은 스스로 걷어낼 수 있었어. 이날이 내가 지금껏 이어온 저공비행의 시작이었는지도 몰라.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서 돌돌이로 이불을 정리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야. 고작 3분이면 끝나는 일이지만,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도록 예열을 돕는 행동인 것 같아. 내게 통했던 방법이라고 너에게도 반드시 유용하리라는 법은 없어. 하지만 무엇이든 다룰 수 있는 도구와 방법을 많이 알고 있으면 해결을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엔 돌돌이라도 굴려보자구. 작은 방의 한구석이라도 깨끗해진 걸 보면, 내 마음 한편에 쌓인 먼지 한 움큼도 털어낼 수 있을지도 몰라.


하루의 시작이 거창하지 않아도 좋아. 마구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하루를 버텨내고 살아갈 힘은 필요하니까, 네가 만만하게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마련해두면 좋겠어. 여러 가지라면 더 좋구. 이렇게 말하면서 나도 돌돌이 굴리는 것 말고도 작고 소소한 일을 더 찾아두어야겠다고 다짐했어. 남은 오늘은 틈틈이 그걸 생각하며 보내야겠다. 헤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저녁 잘 챙겨 먹고 편안한 밤 보내길 바랄게.수요일에 만나.


우리의 저공비행 무사 완주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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