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 씀] 넌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이야?

5월의 말할거리, 나의 우울

by 아름

[돌멩 씀] 5월 1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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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수요일을 살아내는 중인 돌멩이야.


하루는 잘 보내고 있어? 이번 주도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정이 그득해서 충전과 방전을 빠르게 반복하고 있어. 예전 같았으면 분명 금세 지쳐버렸을 텐데, 요즘은 되려 이 일상이 나에게 큰 힘을 줘. 편안한 관계에서 받는 위로가 어떤 건지 요즘에야 느끼는 것 같아. 무엇이든 다 하라고, 잘 할 거라고 응원해 주는 너와 친구들이 있어서 어떻게든 일어나 계속 쓰게 되는 것 같아. 내겐 이 한 걸음이 정말 크거든. 그래서 늘 고맙고 감사해.


무수한 응원과 격려 덕분에 지금은 어떤 것이든 떠오르는 대로 쓰는 글로자가 되어서 완벽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쓰고 있어. 하지만 어릴 적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말겠다고 ‘웅장하게’ 마음을 먹었었지. 웅장하게 여러 번 출발선에 섰지만 늘 종착지까지 가질 못했어.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바로 나였거든. 글만 쓰면 하찮고 어린 글처럼 보여서 내 글이 꼴도 보기 싫었던 때가 있었어. 거기에 보태어서 도전하는 설렘보다 실패하는 두려움이 너무 컸던 탓도 있지.


거기다 우울증이 오고서는 무기력과 무력감까지 보태져서 나는 그 자리에 멈추다 못해 후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아. 글뿐만 아니라 일이나 삶, 모든 방면에서 후퇴하고 있었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나 막막해서 눈꺼풀이 마카롱이 되도록 목 놓아 울어버린 날도 있었어(3_3 이런 느낌). 돌돌이도 통하지 않을 만큼 내 신경은 온통 무능력한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어. 그렇게 며칠 내내 마카롱만 굽다가 정신과에 갔던 날, 큰 위로를 받았던 선생님의 말이 있어. Y 선생님의 말을 들어볼래?


(멩-돌멩, Y-선생님)

멩 : 해야 할 건 많은데 힘이 안 나요. 의지가 너무 박약한 것 같아요.

Y :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멩 : 하고 싶은 일은 모르겠어요.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Y : 음.. 지금 돌멩씨는 소강상태예요. 다 쓴 치약 같은 상태.



세면대 위에 힘없이 쭈그러져 있는 치약을 떠올렸어. 그리고 침대에 쭈그러진 내 모습도 함께. 그 순간에 떠오른 바싹 마른 대추 같은 내 모습이 얼마나 안타깝고 한심했는지 몰라.



Y :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니고. 단지 지금 다 쓴 치약을 겨우겨우 쥐어짜는 상태인 거예요. 충전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서 해야 하는데. 그게 또 마음대로 안되죠? 뭘 하기는 해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렇죠? 그래도 지금 상태가 어떤 지를 아는 게 중요해요. 억지로 막 잘하려고 얼마 남지도 않은 치약을 쥐어짜면 내 손만 아프지. 나오는 치약은 얼마 되지도 않고.



듣고 보니 정말 그래. 그간 뾰족한 근거도 없이 모든 일에서 내 탓만 하느라 마음을 비우고 쉬지도 못했고, 우울에 빠지느라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했고, 불안에 떠느라 잠도 잘 자지 못했지. 소모만 하고 충전은 하지도 않고서 날 혹사 시키고 있었어.



Y :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는 건 너무 좋아요. 그런데 원래 뭐든 엎어질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단지 지금 너무 크게 다가오니까 힘이 드는 거지. 그것도 당연한 거예요. 우울증이라는 게 원래 그래. 그래서 치료도 받고 있는 거고. 돌멩 씨가 능력이 없고, 의지가 없고 그런 게 아니라 우울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스스로한테 너무 엄하지 않아도 돼요.



선생님 말을 듣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보다 내게 필요한 건 ‘그럴 수 있다’는 말이었나 봐. 내가 나를 너무나 한심하게 보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나를 달래야 하는데 나를 나무라기 바빴거든.



‘남들은 다 하는 걸 왜 너는 못해?’

‘남들은 척척 이겨내는 걸 너는 왜 못해?’



Y 선생님의 말에 나는 내 상태를 처음으로 ‘인정’해주었어. 인지하는 걸 넘어서서 ‘나 우울증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구나’, ‘나 지금 생각보다 많이 힘들구나’ 하고 말이야.



말린 대추가 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다 쓴 치약을 아무리 힘껏 쥐어 짜도 힘만 더 들 뿐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여러 번 떠올렸어. 그날은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풀썩 누워 천장을 보며 나와의 화해를 시작했어. 생각해 보면 내가 그렇게 혼구녕을 낼 일도 아니었더라구. 우울증에 불안증만으로도 힘겨운데 나한테 혼나고 있으니 나는 얼마나 서러웠겠어.


나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게 나라고들 하잖아. 그만큼 나를 가장 안타깝고 가엾게 여길 수 있는 것도 나인 것 같아. 일정량의 자기 연민도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해.


힘이 좀 안 날 수도 있어. 조금 덜 기쁠 수도 있고, 조금 더 슬플 수도 있어. 모두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그냥 그런 거야. 마음이 조금 덜 자랐을 뿐이고, 크는 데에는 필히 오랜 시간이 들지.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게 힘든 날 우리 유일의 숙제인 것 같아. 힘이 들 때는 나를 좀 더 돌보아주자. 고생했잖아, 여태 살아오느라.


하루하루 사는 것도 굉장한 힘이 들어. ‘그냥’, ‘일상이라’ 버틴 거래도 우린 하루에 많은 수고를 하며 살아. 그래서 매번 편지 말미엔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있어.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을 대견하게 여기며 살자, 우리. 우리는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 질 필요가 있어, 그렇지?


관대한 마음으로 남은 한 주동안 스스로 쓰담쓰담 해주며 잘 보내보자구. 오늘도 고생 많았어. 주말엔 맛있는 거 꼭 챙겨 먹구 월요일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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