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말할거리, 나의 우울
[돌멩 씀] 5월 19일 월요일
안녕, 조금 들뜬 돌멩이야.
주말은 잘 보냈어? 난 주말을 너무 신나게 보낸 나머지 후유증이 와버려서 오늘은 침대에 몸을 맡기고서 주절주절 편지를 쓰고 있어.
그리고 전해줄 소식이 하나 있지. 스레드에서도 이야기했던 소식이지만, 직접 전해주고 싶었어. 지난 금요일을 마지막으로 정신과 진료를 마무리했거든. 약 5년 동안 정신과를 오가며 버텨온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갔어. 우울증보다 더 힘들었던 불안증 때문에 곤욕을 치른 그 긴 시간이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가 밀려왔어. 이제는 우울과 불안이 온대도 내가 넘어질지언정 지지 않을 수는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지. 불안을 겪을 때 자주 떠올리는 선생님과의 대화가 있어서, 오늘은 그 대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구.
이 대화는 사실 내게 아무 일도 없을 때 나누었던 대화였어. 의아하지? 정말 모든 게 다 괜찮았어. 모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별일 없이 잠잠했고, 코로나로 인한 두려움도 많이 잦아들었었어. 밥도 잘 먹고 있었고, 제법 자주 웃기도 했어.
그런데 불안이 가시질 않는 거야. 손발은 차게 식고, 작은 바늘 수천 개가 온몸을 지나다니는 날카로운 불안의 느낌이 종일 반복돼.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어. 초긴장 상태로 숨을 고르게 쉬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것 같아. 아무 일도 없는데 불안하니 원인을 찾을 수도 없고, 원인을 찾을 수 없으니 해결할 방법도 없이 나는 또 눈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어.
선생님은 매번 상태가 많이 나쁘면 예약한 진료 날짜보다 일찍 와도 된다고 하셨지만, 이 정도는 참아야 할 것 같아서 어떻게든 다음 진료까지 버텼던 것 같아. (조금 이상한 오기가 있어. 괜찮을 수 있다고 혼자 퀘스트 난도를 높이는 오기… 너는 그러지 말고 몸이든 맘이든 아프면 바로 병원으로 가자…) 차갑고 따가운 몸과 맘으로 일주일을 겨우 버티고서 병원을 찾아갔어.
-
(멩 : 돌멩, Y : 선생님)
멩 : 아무 일도 없는데 불안함이 사라지지를 않아요.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들과 사이도 괜찮은데요.
선생님은 무언가를 컴퓨터에 기록하시더니 기록을 멈추시고 나를 마주 보셨어.
Y : 여태 불안한 감정을 많이 느꼈잖아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불안이 더 익숙한 감정이라 거기에 관성이 생겨서 그래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안 될 것 같고, 금세 다시 불행해질 것 같고.
이쯤에서 눈물이 울컥 솟았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내 불행에 대한 불안을 누군가 알아준 건 처음이었거든. 아니 누가 알아주었대도 그 위로를 받을 마음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어. 나는 아프고 힘들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거든. 그렇지 않고서는 내게 일어나는 일과 감정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Y : 좀 행복해도 돼요, 이제는. 반드시 불행해야 하는 사람은 없어요.
-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동안 목에 울음이 꽉 막혀서 소리는 못 내고 고개만 끄덕였어.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정리가 되지를 않아서 약만 받고 병원을 나섰어. 집에 돌아와 여느 때처럼 침대에 몸을 뉘었어.(정신과에 다녀오면 늘 침대에 누워 생각하는 게 루틴이었나 봐)
나는 왜 나를 안쓰럽고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을까. 휴지를 여러 장 적시고 마음을 가라앉혔어. 요동치던 마음이 가라앉으니 어렴풋이 과거의 내가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 알아챌 수 있었어. 누군가 나를 보살펴주기를 바랐던 것 같아. 어린 몸으로 버티고 있는 시간 동안 고되었던 마음을 누구든 좀 알아주고 안아주기를.
어릴 적부터 애어른을 자처하며 든든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단단하진 못한 사람이었어. 그럼 안아 달라고 표현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 표현은 죽어도 하기 싫은 거야. 내가 무르고 약하다는 걸 인정하는 게 싫었나 봐. 표현한다고 해도 거절을 당할 수 있을 테니 그것도 두려웠고.
지금에야 내 마음은 나밖에 모른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나를 달래주고 마음을 추스르며 일어나지만, 그땐 10대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거든. 돌봐주길 바라지만 마음은 열지 않는 모순의 마음을 가진, 유연하지 않고 가시만 잔뜩 돋은 사춘기 소녀. 선생님 앞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제가 한없이 불행해야 누군가 저를 돌봐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여전히, 어쩔 수 없이 내 삶의 기본값이 불안과 불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하지만 Y 선생님과의 대화 후 지금까지 난 ’그런 때가 온 것이지 내가 불행해야 할 사람은 아니다’는 말을 위로 삼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어. 힘든 마음도 조금조금씩 놓다 보면 시간과 함께 흘러가있더라구.
5년간 Y 선생님과 대화하며 내 마음에 품고 있던 어린아이 하나가 함께 자란 것 같아. 이제 넘어져도 툴툴 털고 일어나 다시 걸을 줄도 알고, 힘들면 쉬어가기도 하고, 나를 위해 위로의 말을 쓰기도 하고. 나를 위한 글이 너에게 향하기까지 그 지난한 시간들을 잘 견뎌온 것 같아서 오늘은 나를 좀 더 도닥여 주어야겠어.
반드시 불행할 필요 없고, 언제든 행복할 권리는 있는 우리는 앞으로 웃는 일이 빈번해지기를 바라자. 힘든 나날을 지나다 보면 삶의 모양이 바뀌는 순간이 꼭 올 거야.
5월도 금세 저물고 있어. 이제 곧 푸른 (그리고 찜통 같은) 6월이 올 테지? 여름엔 맛있는 음식이 많으니까, 먹는 재미와 신나는 일이 많은 한 달이 되면 좋겠다. 이번 주도 적당히 얼레벌레 힘내며 주말을 향해 걷고 뛰어보자. 수요일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