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말할거리, 나의 우울
[돌멩 씀] 5월 21일 수요일
안녕, 화창한 날에 나른함이 가득한 돌멩이야.
일주일은 잘 보내고 있어? 난 정신과 진료를 마치고서 다음 진료 예약 없이, 이제 정말 홀로 설 수 있다는 희망과 이제 정말 홀로 서야 한다는 미약한 긴장감도 가끔 느끼며 하루를 보내고 있어. 이 긴장감이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해서 되려 고요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 같아!
오늘은 단약 전에 큰 고비를 넘으며 나누었던 선생님과의 대화를 들려주고 싶어. 조금 무거울 수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이야기일 것 같아. 마음에 병을 안고 사는 모두가 그렇듯 나 또한 정신과 5년간 여러 번의 얕고 높은 언덕이 많았거든. 내게 모든 언덕은 '관계'에서 비롯된 언덕이었어. 친구, 동료, 집단… 그리고 가족.
성인이 되면서 10여 년간 줄곧 가족과 독립된 채 지내온 내게 가족과의 단체생활은 심리적 장벽이 높았어. ‘가족’이라 하면 ‘편안함’이라는 단어가 우선 떠오르지만, 나는 좀 달랐던 것 같아. 우리 가족은 꽤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서로 아등바등 살아왔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생존이었기 때문에 서로의 삶을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 그래서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주었지. 그래도 시간이 약이 되었는지, 그 상처를 세월에 덮어둔 채 십수 년을 살다가 이제는 상처는 없었던 척 살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어.
하지만 얼마 못가 나는 깊은 우울증에 빠져버렸고, 지나보낸 시간들을 홀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어. 나는 이 강도의 감정을 살면서 또다시 겪고 싶지 않았어든. 너무 괴로워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했어. 그러려면 내 우울과 불안의 뿌리를 찾아야 했지. 모든 형태의 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며 기억을 더듬었고, 기억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막히면 그 시간이 나에게 언덕이 되었어.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다 무수한 언덕을 만나고, 힘겹게 언덕을 넘어가며 만난 마지막 종착역. 가족과의 기억에 도달하게 된 거야.
하지만 가족들은 이미 과거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고, 나만 까마득한 과거에 사는 사람이 되어있었어. 시간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 대화가 순조로울 리 없었지. 그래서 한동안 가족과 대화를 나누는 게 괴로웠어. 매일 울상을 지어야 하는 나의 마음과 상태를 설명하는 게 버거웠어. 받아들여질 리 없다 생각하며 마음을 닫기 시작했고, 한여름에도 저녁 시간이 지나면 내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어. 그맘때, Y 선생님이 알려주신 방법이 나를 일으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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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 : 돌멩, Y : 선생님)
멩 : 가족들한테는 제 마음을 설명하기가 싫어요. 제게 뾰족하게 느껴지는 말을 너무 많이 듣게 돼요. 말들이 저를 찌르고 화나게 하는데, 듣지 않을 걸 알아서 입을 닫을 수밖에 없어요.
Y : 아마 돌멩 씨가 노력한대도 가족을 바꿀 수는 없을 거예요.
멩 : 알아요. 그렇지만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게 너무 싫어요.
Y : 말이 뾰족하게 느껴질 때, 돌멩 씨도 표현해야 해요.
멩 : 받아들여지지 않을 텐데요.
Y : 받아들여지기 위해 말하는 게 아니에요. 감정을 뱉는 거예요. 그냥 던져둬도 돼요. 불같이 화를 내지 않아도 밖으로 뱉는 것만으로 마음이 많이 나을 거예요.
멩 : 하지만 입 밖으로 내면 저도 새된 소리가 나오는걸요.
Y : 가족이 주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연습이 필요해요. 감정을 삼키지 말고, 뱉어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누군가 "네가 예민하네."라고 말한다면 돌멩 씨는 "그래? 근데 그렇게 말하니 내 기분이 좀 그렇네." 하는 거죠.
멩 : 그다음에 또 날카로운 말이 들려오면 어떻게 하죠? 싸우는 건 소모가 너무 커서 싫어요.
Y : 자리를 뜨면 돼요. 대화를 위해 뱉은 게 아니라, 온전히 돌멩 씨의 마음을 위한 거니까. 자꾸 한 가지 감정에 사로잡히다 보면 목표로 가는 길이 너무 멀어져요. 저기까지 가야 하는데, 자꾸 주저앉게 되니까 일이 미루어지잖아요.
멩 : 맞아요. 하기로 한 일들이 우울이 깊어지면 더디게 진행돼요.
Y : 그러니 마음을 자꾸 삼키지 말고 뱉어내봐요. 어때요? 그 정도는 해볼 수 있겠어요?
멩 : 네,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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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겠다는 대답을 하면서도 의심했어.
'내가 할 수 있을까?'
'가볍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찌 해내기는 해냈어. 매번 매끄러운 대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내가 우울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며칠을 버리는 일은 없어졌거든. 가족과 나눈 대화도 알려주고픈데, 편지가 이미 길어져서 다음 주에 그 이야기를 들려줄게.
살아오면서 시도조차 못했던 감정 표출을 조금씩 연습하니 타인에게서 온 감정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고, 해야 할 일을 제때 끝낼 수 있었어. 감정에 빠져 마감을 거르게 될까 봐 도전조차 않고 걱정만 했던 뉴스레터를 지금 무탈히 잘 해내고 있듯이 말이야.
사실 나에게 '변한다'는 말은 버겁고, 부정적인 동사야. 새로 적응하는 게 너무나 무겁게 와닿거든.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것 같아. 내가 괴로운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변해야겠더라고. 상황은 내가 조절할 수 없으니 나를 다루는 방법을 바꾸며 5년을 이겨낸 것 같아. 나를 다루다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주변도 조금씩 바뀌는 걸 느꼈어.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들과는 적당히 멀어지거나 되려 가까워졌고, 나에게 좋은 걸 주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지. 내가 변해야 주변이 변한다는 말을 머릿속에만 담고 있었는데, 이젠 나의 변화가 내 환경에 어떤 변화를 미치는 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주어진 나' 말고, '되고 싶은' 내가 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할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난 그걸 위해 살아보려구. 되고 싶은 나를 위해서. 되고 싶은 우리가 될 때까지 함께 걷자. 오래오래. 쓰다보니 요즘들어 '오래'라는 말을 참 자주 쓰게 되네.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말인 것 같아. 그러니 우리도 오래오래 보자.
오늘도 고생 많았어! 나는 오늘 다 못한 이야기를 가지고 다음 주에 찾아올게. 남은 오늘도, 오는 주말에도 자주 즐겁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