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MRI, 신경검사, 청력검사를 모두 마친 후에 메니에르 증후군으로 최종 진단 받았다. 어지럼증에 영향을 주는 뇌에 이상이 없고 깨끗하고, 신경검사도 이상 없으나, 청력이 떨어져있으며, 메니에르에 해당하는 임상 증상이 대부분 일치하므로 진단 받았다.
이상하게 모든 걸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대학병원이나 병원은 꼭 엄마랑 함께 가고 싶다. 그래야 안심이 된다. 혼자 갈 수 있지만, 간 적도 있지만 내심 불안하다. 내가 모르는 의존적인 성향이 있는 건지 아니면 의료사고 이후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이 날도 엄마랑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젊은 여자 분이셨고 말투가 또랑 또랑하면서 다정했다. 3주전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메니에르 일 확률이 굉장히 높고 이 사람은 어지럼이 대단히 심한 사람 일거고, 앞으로 카페인, 녹차, 홍차 이런 종류는 먹지말라고 했다. 안그러면 나중에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그 이후로 진단받기 위해 병원에 왔고 3주만에 진단 받았다. 2주차에 카페인 아예 안 먹는 게 힘들어서 줄였다고 하니까 미안하지만 아예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빈후과를 들락날락한거 까지 합하면 총 한달 반 정도 쉬는 날마다 병원에서 검사하고 약타고 일했다. 마감 하는 날이 많아서 하루 쉬는 날에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병원가야 할 때도 있었다. 너무 어지럽고 아프니까. 이정도의 현기증와 두통과 구역감을 느끼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정도였으니까.
진단을 받으면서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병은 30대 여자가 걸리면 우울증이 굉장히 많이 오는 병이라고. 그 순간 엄마랑 나랑 둘 다 말을 잇지 못했고 정적이 생겼다. 갑자기 심장이 관통한 것처럼 아팠고, 여러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말하자마자 내 눈에서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순식간에 눈물이 펑펑 쏟아져서 나조차 깜짝 놀랐다. 그걸 보자마자 선생님이 엄마는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고 물었다. 진짜 무슨 일 없냐고, 별 일 없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별 일 없지만 그동안 힘들었고, 우울증을 아주 오래전 부터 앓았고, 20대때는 조울증 약을 2-3년간 복용했었고, 그래서 아직 우울증약은 먹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리튬을 먹었을 때 기억이 좋지 않다고. 그러자 선생님이 잠은 잘자냐고 물었고, 나는 원래 잠을 잘 못잔다. 잠을 제대로 잔 기억이 거의 없고 10대때부터 그랬다고 하니 갑자기 "원래 못 자는 건 없어요."라고 하는 데, 더 눈물이 났다. 제대로 자고 싶다. 제대로 살고 싶다. 이 무기력증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아파서 우울증이 온건지, 우울증이 있어서 아픈건 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래묵은 병이었다.
나는 사실 이 기분을 잘 모른다. 잘 잔다는 게 어떤 건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어느 날 하루 잘 잤다고 말할 수는 있겠는 데 보통 내 생활에서 "잠"은 벼랑에서 떠밀리듯 이뤄지는 것이라 모르겠다. 원해서 잤고, 개운하다거나, 기분이 좋다거나 할 때가 없고, 최근 약을 복용한 후에는 계속 이상한 꿈들 사이에서 깬다. 3일간은 10시에 잠들면 새벽 1시나 2시에 일어나서 다시 잠들지 못하고 새벽 6시에 회사로 출근하고 점심시간에 식욕도 없어 먹지 못하고 오후 4시에 끝나 겨우 겨우 엄마 아빠 혹은 친구들이랑 저녁을 간신히 먹고 집에와서 8시나 9시에 잠들고 또 새벽에 일어나서 반복했다. 어제와 오늘은 특히 힘들어서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구토할거 같은 증상이 계속 있고 매장에서도 머리가 어지럽고, 덥고, 스트레스 받고.
처음 진단명을 받았을 땐 지난 세월동안 이렇게 아픈 것도 모르고 살았나 싶어 억울한 기분도 있고 슬프기도 했고 왜 이렇게 당연하다고 여겼나 바보 멍청이처럼 견뎠나 싶어 눈물이 났다. 한 번 터지니까 멈추기 힘들었지만 멈추고, 회사에 진단서 내야 하는데 써주실수 있냐고 물었더니 써주셨다. 그리고 다음에는 우울증 약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고, 우울은 유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낳지도 않은 자식이 내 우울을 유전 받을 거라는 걸 그냥 알 수 있었다. 이 깊은 우울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세대를 걸쳐 유전자에 박힌 채로 내려온 것, 어쩌면 내 유산이겠구나, 내 자신을 믿지 못하는 순간에도, 이 우울을 축복처럼 여기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내 몫이겠구나.
계속해서 고지를 눈앞에 두고 두려움을 마주한다. 사실은 나는, 글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문장을 잘 못 쓰고, 이야기를 쓸 수 없고, 오로지 피상적인 것을 서술할 수 밖에 없다는 두려움. 내 속은 텅 비어서 말할 것이 없다는 두려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떠돌지 않을까 하는 많은 두려움을 마주한다. 그래도 괜찮아, 라는 말은 아무 소용없고 위로도 되지 않으므로, 되는대로 그냥 써재끼는 게 내 요즘 일상이다. 뭣도 없어도 아무것도 없어도 그냥 하고 있다. 지금도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면서 써야 하니까 써야지. 하고 쓰는 거다. 남겨야 하니까.
그러면서 선생님께 피드백 받은 제목도 계속 생각 중이다. 화상 말고 좋은 게 뭐가 있을까. 하고.
별개로 내가 이 병을 진단 받고나서 카페인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매장 사람들에게 했는 데 우리 직원 중 내가 동생처럼 아끼는 직원 한명이 다른 사람에게 다 커피를 만들어주면서 나는 카페인이 없는 민트티를 우려줬다. 사소한 배려 하나에 관심 하나에도 눈물이 핑 돈다. 눈물이 핑, 그리고 펑펑 나는 울고싶다. 울 수 없는데 울고 싶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