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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May 18. 2022

술을 안 먹는 이유

술 안 먹어도 취해 있으니까. 안 먹어도 반쯤 취해 있는 상태로 사니까 필요 없다. 일할 때 무슨 정신으로 일하는지도 모른다. 바쁘고, 또 바쁘고, 숨차고, 웃고, 얘기하고, 혼자 생각하고, 저 사람은 왜 그럴까. 나는 왜 그럴까. 뭘 하고 있을까. 마시지 않아도 취하지. 내가 아닌 나를 연기하는데, 그것 또한 나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정확하게. 집에 오면 모든 걸 내려놓고,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고 가만히 있고 싶어. 과제도 하고 싶지 않고 공부도 하고 싶지 않고 잠을 자고 싶지도 않고, 밀려오는 두통만 있다. 지금은 손목 인대가 2주째 아프고 발목도 덜 나았고 그런 건 관계없지만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 공부할 시간을 간신히 내고 있고. 이제 소설 2개를 다 읽었고, 호르몬 약을 끊었다. 끊은 게 관계가 있을까? 허리가 아픈 게 아니라 기분이 이상하다. 묘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과 동시에 강렬하게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죽음이고, 완성되는 것도 죽음뿐이다. 죽고 싶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니 죽고 싶다. 어두컴컴한 절망 속으로 떨어지고 싶다. 좁은 구멍으로 떨어져서 아무것도 없는 채로 피가 넘쳐흐르게 죽고 싶다. 그렇게 죽어도 아무것도 없다는 거 알아서 괜찮다. 이제는 정말로, 살아간다는 데 어떤 의의을 두지 않아도 괜찮다. 죽음을 기다리는 일은 지루하니까 글을 쓰고 일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죽은 거니까. 살려고 발버둥을 치는 걸까.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아니지. 모르겠다. 꿈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무엇에 취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취했고, 죽고 싶고, 산산이 부서 버리고 싶고, 찢고 싶고, 찌르고 싶다. 공격적으로 무언가 하고 싶다. 나에게, 내 몸에게, 강렬한 충동이 일어난다. 평소에는 일어나지 않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일어날 때는 위험하다고 느낀다. 누군가에게 말한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내가 한계치를 벗어났다는 말이다. 이이상 무슨 일이든 하면 안 된다. 코드블루. 빨간 불. 길을 건너지 말 것. 여기에서 넘어가지 말고, 숨을 깊게 쉴 것, 한 박자 쉬어갈 것, 다음 신호에 건너갈 것.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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