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살아가는가. 다시금 곱씹게 된다.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사람의 마음은 셀 수 없으며 개인의 감정 스펙트럼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규정지을 수 없다. 정신이 두 가지로 갈라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최근엔 육체와 정신, 그리고 또 다른 정신으로 나뉘어있단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정신의 한계를 경험하고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고 믿었지만 실재하는 육체의 고통은 그 한계를 늘려준다.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 깨닫는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나의 고통은 어디에 있는가. 끝이 있는가. 본능에 충실한 육체는 솔직하고 과감하고 아름답다. 정신이 깃든 육체는 끊임없이 타인의 탐욕과 욕망의 대상이 되고 정신은 파괴된다. 파괴된 정신과 망가진 육체는 보이지 않는 곳에 버려두고 언제나 타인이 욕망하는 내가 되는 걸 선택한다. 망설이지 않는다. 그 편이 왠지 모르게 좋으니까. 나를 마주하는 일보다 쉽게 느껴지니까. 모르겠다. 어느덧 입이 떨어지지 않고 표정을 드러낼 수 없고 생각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고정된 이미지에 박혀 나를 곱씹는 일이 잦았는데 이젠 버틸 힘이 없는지도. 집요하게 생각해서 괴롭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닐지도.
나약한 나 자신을 싫어한다, 믿지 못한다. 자기혐오에 빠져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렇진 않다. 언제나 자기혐오에 빠져 있지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살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르겠다.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밀려오는 허망함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계속해서 해내고 있지만 여전히 싫다. 도무지 좋아할 수 없다. 왜일까. 가족들 사이에 있는 나, 친구들 사이에 있는 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나, 나와 있는 나. 어디서든 발 붙일 수가 없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모든 게 나 자신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쉽지 않다. 어떻게 그게 다 나 자신이지? 내가 인정하는 모습만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인정하는 나의 모습은 고립되어 있는 사막에 갇혀 미치광이처럼 떠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살아 있을 이유 따위 없는, 어디론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도 알 수 없는 그런 모습. 정신의 세계는 그러하다. 황폐하고 광막하며 메말라있다. 반면 내 육체는 물속에 침잠되어 있고 흐르는 대로 흘러간다. 파도가 치는 대로 바위에 부딪치며 휩쓸려 너덜거릴 때까지 살아있다. 차라리 누군가 죽여줬으면 고민 따위 할 필요 없을 텐데 하는 소망과 멀쩡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그렇게 쉽게 이 모든 게 나야,라고 말할 수 없다. 나 자신이 생각하고 써왔던 일들을 다시 한번 부정한다. 육체가 하는 일들과 관계없이 인정할 수 없고, 신뢰할 수 없으므로 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