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슬플 거니까. 사랑해서, 죽도록 잊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약속하자고, 그렇게 말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죽지 말라고, 안부인사를 하는 친구가 있다. 장례식에, 요양원에 오라고, 늘, 덤덤하게, 농담하듯 말을 건네는 친구가 있다. 죽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서로의 행보를, 응원하는 친구가 있다.
오늘도, 어떤 얘기를 하다가, 장례식에 오라고 하길래, 그건 장담할 수 없어서 안된다, 감당이 안될 거 같으니까, 약속할 수 없으니까, 안된다, 그리고 나도, 절대로 자살만은 하지 않겠다고. 죽을 때, 죽더라도. 사는 게 너무 슬프고, 힘들고, 그렇지만, 우리는 매번 실패하고, 가끔 성공하는 것처럼, 가끔 행복하니까, 살만하다고. 행복하다고, 친구는 말한다.
이젠, 감정의 그래프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모든 게 참을만하다. 심하게 오는 날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하려고 노력하니까, 괜찮다. 나를 다루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으니까. 그래도 충동적으로 찾아오는 죽고 싶은 욕구는, 힘들다. 그리고, 그 욕구는 아무도 없을 때 가장 심하게 온다.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 밤도 아니고, 대낮에,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화창한 날에, 더 강하게 타오른다.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모른다. 어떤 날은 버스를 타고 집에 가다가 차에 치이고 싶고, 어떤 날은 높은 빌딩의 옥상을 바라보면서, 떨어지면, 좋을 것 같다, 그 뒤에 따라오는 아픔은 둘째, 그러다가도 아,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다.
거의, 항상, 틈 날 때마다 무엇을 쓰고 싶은가, 무엇을 쓸까를 계속 생각한다. 딱히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재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데도, 의미 없는 기록을 계속한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이나, 어떤 사건을 보고 느낀 감정이라던가, 생각들을, 담아둔다. 보통은 똑같은 말을 뇌까릴 때가 많지만, 뒤돌아보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서서히, 내가 모르던 나와, 내가 알던 나는 서로 교차되거나, 혹은 사라지기도 한다. 작년에는, 올해는, 내년에는, 앞으로는, '내'가 얼마나 적을지, 많을지, 모르겠다. 하나로 통합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예상한다. 왜냐하면 잡생각이 너무 많고, 혼란스러워서, 따로 분리하지 않으면 일상생활하기가 어려우니까. 아마도, 몇 명은 살아남지 않을까. 누군가 한 명이, 정말 강력한 한 명이 죽고 싶다고 말하고, 몸부림을 쳐도, 나머지의 다른 내가 말리는 거겠지.
그러니까 자살하지 않고, 가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꼼지락꼼지락, 하루를, 살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