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ED
스타벅스를 퇴사 후 같이 일했던 파트너들과 술을 마셨다. 스타벅스는 수평적인 관계를 위해 영어로 된 닉네임을 쓰는 데 내 닉네임은 케이트(KATE)였다. 아웃백도 내가 입사할 때 당시는 미국회사여서 닉네임을 썼는 데 그때부터 케이트란 닉네임을 써서 스타벅스에서도 똑같이 썼다. 내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LEO라고 쓰긴 뭐해서 타이타닉에 나온 케이트 윈슬렛에 케이트를 따서 지었다. 이름을 짓거나 작문할 때 의미 없이 짓는 건 하나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나 의미 있는 걸로 짓는다. 그래서 우리는 술자리에서 자기도 모르게 서로의 이름이 아니라 닉네임을 부르는 게 익숙한데 주변 사람들이 보기엔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직원인 제이라는 직원이 있었다. 평소에 말이 없지만 뒤에서 누구보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고, 나처럼 애니메이션이랑 만화를 좋아해서 말이 잘 통했다. 그리고 난 말 없는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건네는 타입이다. 누구 하나 소외당하는 걸 원하지 않아서 신입직원일수록 더 말을 건네곤 한다. 내가 그런 경험이 많았으니까, 일부로 소외감 느끼게 하려는 건 아니겠지만 처음 오면 낯설고 어색해서 기존 직원들끼리만 아는 얘기만 해도 멀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 물론 제이는 매장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알지만 내가 습관처럼 말을 많이 걸었었다. 나름 우리는 친해져서 영양제도 주고받았고 서툴지만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됐다. 그 술자리에 제이를 초대했을 때 다들 제이가 올 줄 몰랐다고 놀랐지만 난 재밌었다. 여섯 명 정도 있었는데 우리가 어렸을 때 키워본 동물들 얘기가 나왔다.
어렸을 때 햄스터를 키우다가 잃어버린 기억, 병아리가 죽었던 기억, 각자 자신들이 키워본 동물들의 죽음을 처음 목격했을 때의 기분이나 느낌을 얘기하고 있었는데 제이가 자기도 동물 많이 키웠다면서 말했다. 뜬금없이 “개구리를 키웠는데 익사했어요.”라고. 그런데 그 말을 하는 표정이 너무 덤덤하고 아무렇지도 않아서 그게 웃겼다. 내용은 말도 안 되는데 제이의 제스처나 말투가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아서 웃었다. 들어보니 올챙이를 키우다가 점점 자라서 앞발 뒷발이 다 나오고 있었는데 개구리가 되었을 때 어느 정도 물을 빼주고 숨 쉴 수 있도록 돌 같은 걸 마련해줬어야 하는데 그걸 몰라서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 채로 익사했다는 말이었다. 내용은 굉장히 기괴하고 슬펐으나 말하는 제이 때문에 실컷 웃고 나서 물었다. 혹시 내가 이 내용을 소설에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없으니 이 이야기를 듣는 와중에도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고 했더니 얼마든지 쓰라고 하면서 내가 책 내면 꼭 구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난 정말 그 소재로 소설을 시작했다. 그게 지금 연재하고 있는 ‘고양이의 방탕함’의 첫 장면, 키에르와 캐시가 헛간에서 개구리의 죽음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그 장면을 쓰고 제이에게 보여주었다. 제이가 정말 잘 쓴다고 칭찬하면서, 꼭 나오면 보겠다고 다시 말해줬다. 최근에 있었던 개구리 사건이었다.
나머지 한 가지는 나는 어렸을 적 시골에 자주 내려갔다. 가평군 대성리라고 지금은 시골의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어렸을 땐 시골이었다. 개울에 개구리와 도롱뇽도 살았고 그때는 개구리가 천연기념물이 아니었을 때다. 가끔 아빠가 참개구리를 여러 마리 잡아오면 작은 아빠랑 작은 엄마가 개구리를 튀겨주셨다. 개구리 알이랑 개구리랑 같이 튀겨주셨는데 개구리모양 그대로 튀긴 게 아니라 다리만 따로 몸통 따로 이런 식으로 튀겨주셨다. 그중에 개구리 다리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닭고기랑 비슷한데 더 쫄깃하고 담백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개구리를 자주 먹었었다. 게다가 큰 고모부가 무슨 정력에 좋다는 뱀을 잡아서 뱀술 같은 것도 담그고 아빠는 툭하면 산에 올라가서 영지버섯 따와서 어렸을 때 영지버섯물을 그렇게 많이 마셨다. 보리차대신 영지버섯의 쓴 물을 몸에 좋다고 벌컥벌컥 마시게 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끓여놓은 물이 영지버섯물 밖에 없어서 눈 딱 감고 마셨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지금은 천연기념물이기도 하고 주변에서 좀처럼 볼 수 없지만 어렸을 때 먹었던 기억은 어제처럼 선명하다. 작은 아빠네 가게에 의자에 걸터앉아서 개구리 다리를 먹었던 기억. 멋모르고 뛰어다니면서 개울에 뛰어들어 수영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올챙이와 개구리 사이에 있는 사람. 개구리가 되어야지. 익사해서 죽든, 튀겨져서 죽든 제대로 된 개구리가 된 채로 끝을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