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면 속의 다정한 초대
오늘 아침은 꽤 분주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았고 나는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일전에 신청한 온라인 수업이 오전에 있어서 더 정신없었던 하루를 보냈다.
아이가 일어나기 전에는 일을 조금 하다가 수업 전까지 강의하시는 선생님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원래 아이가 있는 삶이란 내가 계획한 데로 흘러가지 않는 법. 생각보다 일찍 일어난 아이의 아침 식사를 신랑이 점심에 밥을 먹으러 올지 몰라서 미리 찌개까지 준비해 놓았다. 틈틈이 눈에 보이는 지저분한 것들을 정리하고 치우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은 없었었고 겨우 컴퓨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바로 전 아이에게 '엄마 수업 들어가니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말한 뒤 식탁에 앉아서 Zoom 화상회의를 켰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아이는 제 할 일을 하다가도 가끔 나에게 말을 걸어오긴 했지만 생각보다 잘 기다려 줬다. 덕분에 나는 수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라면 내가 이런 강연을 들을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년에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제는 내 할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 독서모임이나 필요한 수업이 있는지 찾아서 들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가도 내가 할 수 있는 활동은 지극히 제한 적이었다. 평일 저녁에 먼 거리에서 하는 수업이나 강연들은 내가 참여할 수 없었다. 무리해서 부모님을 불러야 했고 그게 부모님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신청했던 수업들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물리적 거리와 시간 상관없이 컴퓨터만 있으면 Zoom수업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아이와 신랑에게 양해를 구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규모가 큰 강연이든 소규모 강연이든 비대면보다는 대면이 좋다. 강연자는 실시간으로 청중의 반응과 눈빛을 한 번에 볼 수 있고 청중은 생생한 강연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비대면 강의가 많아지니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더 확대된 것은 사실이다. 소통이 간절했던 사람들은 비대면이라 할지라도 이 시간이 소중하며 부드럽게 내미는 손이 한없이 다정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