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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고래작가 Oct 07. 2020

나의 오만 그리고 허영

고전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

온라인 독서 모임 함연을 시작하면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고전 문학은 3-4년 전쯤 [제인 에어]와 [노인과 바다]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었다. 어떤 사람은 청소년기에는 읽어봤을 법한 책을 나는 서른이 넘어 아이를 출산하고 '붙들만한 것이라곤 책밖에 없어-'라는 생각으로 내 시간이 조금이라도 생겼을 때 틈틈이 읽었다. 원하는 만큼 많이 읽진 못했지만 나름의 취향을 정해 놓고 조금씩 찾아 읽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굉장히 오래전에 사두고 매번 앞부분을 펼쳐 놓고 읽고 덮어 두었다가 다시 생각나서 펼쳐 들었을 때는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상태가 되었다. 소설이 재미없었던 건 아닌데 제인 오스틴의 책과 내 인연이 그 정도 선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함연에 함께 하면서 다시 이 가을에 그녀의 말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직은 소설의 초반부를 읽고 있어서 전체적인 방향을 파악하진 못했지만 고전 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사람의 성격을 세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언젠가 지나가는 글을 읽다가 사람들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단순하게 흥미를 위해서가 아닌 사람을 알기 위해서라는 뉘앙스의 글을 보았다. 현실에서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을 모두 파악할 수 없다. 알고 지낸 시간이 아무리 길다 하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조금씩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소설에서는 각 캐릭터의 내밀한 감정선까지 모두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롭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아- 나도 이런 적이 있었던 것 같아.' 재미있는 점은 아주 오래된 소설이며 시대적 배경이 전혀 다름에도 전혀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0년 전에도 현시대에도 어딜 가나 이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네더필드로 새로 이사 온 빙리씨가 연 무도회에 다녀온 베넷 가족들은 파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던 도중 베넷씨의 딸 메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오만이란 실제로 아주 일반적이라는 것, 인간 본성은 오만에 기울어지기 쉽다는 것, 실재건 상상이건 자신이 지닌 이런저런 자질에 대해 자만심을 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들 가운데 거의 없다는 것이 확실해. 허영과 오만은 종종 동의어로 쓰이긴 하지만 그 뜻이 달라. 허영심이 강하지 않더라도 오만할 수 있지. 오만은 우리 스스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더 관련이 있고, 허영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것과 더 관계되거든

[오만과 편견] 중에서, 제인 오스틴 지음 


나는 오래도록 오만과 허영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품고 있는 자만심과 다른 사람에게 비쳤으면 하는 내 모습.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되도록 화를 내지 않으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것 같다. 욱하는 성격은 여러모로 좋게 비치지 못할뿐더러 그건 나에게도 독이 되기 때문이다. 화가 날 것 같은 상황에는 순화해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사람들 너무 편한 가족들에겐 되려 그러지 못했다. 이건 핑계 일 수도 있지만 친밀한 관계는 나 혼자 노력한다고 '관계의 부드러움'을 유지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낯선 사람이나 적당한 선을 지키는 사이에서는 선의를 베풀면 선의로 돌아오기 때문에 화 낼 일이 생기지 않는데 친밀한 관계에선 상대가 별 것 아닌 일로 계속해서 '욱-'하고 화를 내면 '참는데도 한계가 있다.'라는 마음이 훅 하고 올라온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내 오만이고 사람들이 나의 유순한 모습만 봤으면 하는 것은 내 허영이다. 화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물렁물렁하고 둥글둥글하게 늙어가고 싶단 희망을 오늘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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