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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다람쥐 May 15. 2023

루틴이 멈춘 다음날.

Day 73

23년 3월 이후, 매일 글쓰기와 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어제 73일째에 중단됐다. 몸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토요일 아침, 첫째 딸은 대구에서 진행하는 '2023 파워풀 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치어리딩 종목으로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이에 초등학교 1학년 아들과 둘이서 주말을 보낼 계획이 있었다. 아들보다 손자를 더 좋아하는 부모님 댁에(아이에겐 할아버지 할머니) 방문하기로 했다. 눈이 안 좋아 더 이상 운전하지 않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바닷가인 안산 제부도를 갈 생각이었다. 아내와 딸이 먼저 집을 나섰고, 자고 있는 둘째를 깨워 서둘러 준비해 부모님 댁에 갔다.


부모님 집에 도착할 때까지 괜찮았던 둘째 아들 몸이 심상치 않았다. 할아버지 집에 가면 마음대로 TV나 유튜브를 보고 닌텐도 게임을 할 수 있어 항상 신났던 아이인데, 멍하니 누워만 있는다. 체온을 재보니 열이 39도, 얼른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근처 소아과를 인터넷으로 찾았다. 극단적인 출산율 감소로 소아과를 보기 힘들다고 듣긴 했는데, 부모님 집 근처에는 특히나 찾기가 어려웠다. (주말에 문 여는 곳을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결국 예전에 살았었던, 차로 3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소아과로 갔다.




아이는 A형 독감이었다. 70세가 넘으신 부모님께 전염이 될 수 있으니, 진료를 받고 바로 집으로 왔다. 나 홀로 아이 돌봄이 시작됐다. 아이가 아플 때, 아내 없이 혼자 아이를 케어한 경험은 없었다. 서투르지만 아이의 이마에 찬 물을 묻힌 수건을 이마에 올렸고, 몸을 닦고, 부드럽게 넘길 수 있는 죽과 얼른 힘내라고 좋은 고기를 사서 먹였다. 배를 채웠으니 이제 약 먹을 시간이다. 아이는 약병 길쭉한 입구에 살짝 혀를 갖다 대더니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먹기를 거부한다. 그래도 타미플루와 해열제 등은 꼭 먹어야 한다. 아이를 설득했고, 겨우 타협에 성공해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사실 아빠인 나도, 몸이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독감은 아니지만 환절기라 목감기가 심했다. 목이 간질간질했고, 수시로 기침이 나왔다. 특히 잠자기 전이 괴로웠다. 자려고 누우면 목이 간지러워 기침이 멈추지 않아, 최근 며칠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이러다 보니 진이 빠졌나 보다. 토요일은 글쓰기와 걷기 루틴을 꾸역꾸역 해냈는데, 일요일엔 결국 퍼져버렸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안 했다. 실컷 TV와 넷플릭스만 보면서...

     



이전의 나였다면 '역시 난 안되나 보다'하고 자책,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그리곤 바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고, 어차피 루틴이 깨진 거 조금 더 멈춤을 연장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의 내 의지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비록 매일 해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은 깨졌지만, 그것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잠시 멈췄다고 주저앉아 아무 행동을 하지 않는 게 진짜 최악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아직 완벽하게 회복된 몸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처럼 회사에 일찍 도착해 휴게실에서 글을 쓴다. 업무를 마친 이후, 아침에 쓴 글을 다시 보며 다듬고 있는 중이다. (퇴고라는 표현은 내 주제에 민망하다.) 그리고 지금 글을 완성했다. 루틴이 멈추고 난 이후, 가장 빠른 리스타트(Restart)이다. 평소처럼 글쓰기도, 1만 보 걷기도 모두 해냈다. 그리고 내일도 할 것이다. 


멈춤은 아무것도 아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도 있고, 가끔은 만사가 귀찮아 멍 때릴 수도 있다. 인간은 전기만 있으면 에너지가 충만한 기계가 아니니깐. 정말 중요한 것은 멈춤 이후 다시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자책감이나 자괴감의 늪에 허우적대는 것이 아닌, 대수롭지 않게 훌훌 털고 다시 시작하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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