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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작가 Feb 15. 2021

딱히 대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

그냥 갑자기 어느날 문득

결혼을 하고 남편 따라 지방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주부의 삶을 시작했다. 주체적인 살림꾼이 되어 새로운 공간을 꾸미고 소꿉장난하듯 예쁘게 데코 하며 음식을 하고 지냈다. 따끈따끈한 갓 신혼시절에는 야식과 함께 다양한 주종으로 한 잔 하며 같이 잠드는 밤을 즐겼고, 저녁시간에 나란히 보는 TV 프로그램도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점점 늘어가는 살을 보고 충격을 받은 후에야 야식을 끊게 됐고, 함께 보내는 저녁시간을 고민하다 골프 레슨을 받기로 했다. 처음 접해 본 스포츠 덕분에 우리의 저녁시간은 또 새롭고 가득 찼기에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즐겼다.


지방에서의 1년 생활 후, 남편 발령 덕에 제주로 이사하게 되었다. 관광의 도시 제주에서 내가 제주살이를 하게 되다니! 예상하는 것처럼 제주살이는 아이가 없는 우리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일들이 가득했다. 노 키즈존의 예쁜 카페를 다닐 수 있었고, 높고 낮은 오름들도 올라보고, 여름이면 바다로 달려가 원 없이 물놀이를 하고, 겨울이면 설산을 보러 한라산을 오르기도 했다.


제주의 사계절을 한 번씩 느껴봤을 때였나. 주변 지인들의 임신과 출산 소식을 접하게 되고, 조카가 말이 트이며 귀여움 가득 느낄 때 문득 아기에 대한 생각이 깊게 다가왔다. 유아교육을 전공했던 나는 현장에 있는 동안 육아 예능 프로그램은 절대 보지 않았다. 평일 내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 주말만큼은 온전히 성인끼리 보내고 싶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일을 그만둔 후 다시 육아 예능을 즐겨보게 되었는데 앞서 말한 '문득 아기에 대한 생각이 깊게 다가왔다'던 시기에 육아 예능도 새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여졌다. 지나가는 미디어의 한 장면일 뿐이었는데 아이들의 소중함과 사랑스러움이 조금 더 가슴 깊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우리 아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우리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어떤 느낌일까, 아기에 대한 사랑이라는 건 도대체 어떤 감정일까,


나 좀 설레는데?



한 편 남편의 달라진 태도를 보면서 오히려 내가 영향을 받은 것 같기도 하다. 연애하면서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기나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있는 아기에게 분명 별 관심이 없던 남자였는데 요새 마주치는 아기들에게는 부쩍 다정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기에게 눈빛을 발사한 후 자기를 보며 웃었다며 혹은 웃음을 멈췄다며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하는 남편의 모습이 나 또한 흥미로웠다. 이 남자, 아기를 꽤 좋아하는 것 같네.


그렇게 일상에서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간간히 주고받았고, 우리의 미래를 그려보곤 했다. 남편이 이직해야 하는 시기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자리가 잡은 상태에서 아기를 갖기로 해 먼 미래라고 생각하며 미뤄왔었다. 이런 고민에 대해 양가 가족들과 이야기도 해보니 자리를 다 잡은 후에 아기를 갖는 것도 마냥 정답은 아니었다. 많은 이야기 끝에 결정했다.


 "그래, 닥치면 또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은 있겠지. 오히려 지금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잖아?"딱히 대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한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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