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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치즈 Sep 27. 2019

2교시 - 조직학(下)

족보의 중요성

 해부학은 5학점이었던 반면 조직학은 1학점이었다. 그래서인지 조직학 시험이 상대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조직학을 A와 해부학 B를 받는 것보다 해부학 A와 조직학 C를 받는게 더 나을테니


 특히나 첫번째 시험 땐 다들 해부학에 모든 노력과 시간을 올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직학은 간신히 1번만 읽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만 하더라도 기출문제를 보고 들어간다는 거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족보를 안보는 만행(?)을 저질렀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들을 몰랐던 것이다.

 너무할 정도로 작년과 비슷하게 문제가 나왔다. 조직학 교수님들이 내 기억으론 유독 수업에 대충이었는데 아마 시험문제도 그들의 귀차니즘이 반영이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족보를 안 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망했'고, 족보 답 중에서도 틀리게 달린 것들도 있어 족보를 맹신한 사람들은 중간, 그 와중에 족보를 분석하면서까지 공부했던 사람은 함박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의과대학은 족보 사회라는 걸 그 때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난 족보 맹신했던 그룹이라 중상 정도의 성적을  받긴했지만 사실 학생 평가하는데 있어 그렇게 하는게 적절한가 싶다. 의과대학 성적 분포를 보면 오른쪽으로 쏠린 아주 좁은 정규분포표를 이루고 있다. 1문제 차이로 등수가 몇십등씩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10%씩 잘라 냉정하게 성적을 매긴다. 그 1문제를 더 맞추기 위해 강의록을 1번 더 보는 소모적인 경쟁을 하는 것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기본 점수만 넘기면 진급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대신 상위 10%에겐 '슈퍼패스'라는 이상한 표창을 하긴 하지만). 학생들은 남는 시간에 연구를 하거나 외부 활동을 하는 등 자신의 역량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실제로 학생들을 만나 물어보면 매우 만족한다고 답한다. 

 미국 의과대학도 마찬가지로 절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이 우수한 인재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시험도 인터넷으로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들었다. 족보가 만연한 한국 의과대학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순순히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목적으로 열심히 공부한 후 정정당당하게 시험에 응한다고 한다. 

 줄 세우는 목적은 하나다. 나중에 과에서 사람을 뽑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 사용하기 위한 것. 그런데 웃긴 건 공부를 잘 하는 것이 곧 일을 잘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적 말고도 평판을 많이 신경 쓴다는 것이다. 이럴 거면 굳이 상대평가를 고집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의과대학 학생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잘 쉬어야 잘 공부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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