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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l 14. 2023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

예전에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산타클로스에 비유하며, 믿음의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그 믿음이 실제로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빨간 옷에 사슴썰매를 타고 다니며 선물을 뿌린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는 아무래도 우리 정서에 와닿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2023년 설을 맞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확고한 진리에 믿음의 작동 여부가 중요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비유해 본다.



당연히 설날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푸짐하게 차려진 상에 둘러앉아, 노란 계란 지단과 짙푸른 김가루 고명이 올라간 뜨끈한 떡국 한 그릇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틀림없는 사실이자 명백한 진실이다. 하지만 꼬치꼬치 캐는 어른의 나쁜 습성이 불쑥 고개를 든다. 그러면 떡국 두 그릇을 먹으면 두 살을 먹는 것인지? 떡국 대신 떡만둣국을 먹어도 되는지? 설 당일 대신 연휴에 먹은 떡국으로도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을지? 같은 불충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이런 의문들은 당연히 틀렸고 잘못되었으며 나쁘기까지 하다. 이렇게 비판적인 생각을 하는 어른들은 떡국을 먹으면서도 나이는 더 먹고 싶지 않아 하는 도둑놈 심보를 갖게 되니, 어린아이들은 그런 고약한 어른이 되지 말자.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이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그 확고한 진리를 믿을 때야말로 우리는 설날에 떡국을 먹으며 다 같이 한 살을 더 먹게 된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모두 육아휴직을 쓰는 스웨덴의 '제도'가 육아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사실은 떡국과 같은 믿음이다. 그 믿음을 사람들이 따라야만 실제로 작동하며 세상이 돌아간다. 마찬가지로, 외교관이 말해준 '투명성'이나 업무 문화에 담긴 '소통' 또한, 그것이 옳고 맞고 좋은지와는 별개로 실제로 작동하기에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믿음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의하느라 그 믿음을 어떻게 작동시킬지에 대한 주의를 놓치지 쉽다. 이러한 전형적인 함정은 마치 놀이동산과 같아서 사람들을 논쟁 속으로 퐁당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함정 다음에 만날 질문은 '믿음이 옳고 맞고 좋은지'를 지나, 그런 믿음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구성원의 다수가 '실천'할 수 있는가이다. 비호감인 어른의 습성 상, 난 사람들을 바꿔야 한다는 이런 계몽적인 주장의 실현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그런데도, '옳고 그름'을 구별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우리를 이끄는 올바르고 좋은 '기존 믿음'을 버리고, 틀렸을지도 모르는 믿음일지라도 '작동 방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새로운 믿음'을 굳이 가져야 할까? 물론 이 새로운 믿음도 설날에 먹는 떡국처럼 좋은 믿음일 것이다. 하지만 두 믿음 모두 좋을 경우에는 우리는 어떤 쪽을 선택해야 할까? (혹은 둘 다 나쁠지도 모르지만 그런 부정적인 의문이 든다면 그는 더 이상 설날에 세뱃돈도 받지 못하게 돼버린 냉소적인 어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이 블로그에서 일상의 순간마다 문득 다가왔던 질문들을 던졌고 던지고 있고 던질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이 다 정답이다. (혹은 오답이다. 혹시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관측되기 전까지는 정답이면서 오답일지도 모른다.) 다만, 그 답이 무엇이든 사람들에게 이제까지와는 다른 생각을 심어주고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자극할 수 있길 바란다. 그래서 언젠가 실제로 작동할 그날을 꿈꿔본다. 이렇게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니, 비판적이고 부정적이며 냉소적인 고약한 비호감이 어느새 돼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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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2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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