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 카"라는 형님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한다. 그에 뒤따르는 어려운 설명들은 제끼고, 나는 이 말을 "역사란 보름달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보름달에는 토끼도 살고 꽃게도 살고 책 읽는 소녀도 산다. 오늘날에는 그런 고전적인 비유 대신 물 한 방울 없지만 달의 바다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역사도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는 그를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래서 난 왠지 롤스로이스를 타실 것 같은 "카" 형님의 격식 있는 말 대신에 역사란 보름달이라고 부르고 싶다.
"카" 형님은 "과거의 사실들이 어떠했는가 보다는 역사지식을 생산하는 역사가가 현재의 사회와 현실에 대해서 어떤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하신다. 고고하신 형님 말씀이 뭔 소린지 모르겠으니 누구나 볼 수 있는 보름달에 빗대어 풀어보자. 달을 보고 떡방아를 찧는 토끼가 떠오른다면, 그는 떡방아나 토끼와 친숙한 사람일 것이다. 꽃게나 책 읽는 소녀가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떡방아나 토끼는 보다 덜 친숙할 것이다. 형님의 있어 보이는 말은 그런 뜻이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를 보는 시각에는 고정된 사실 그 자체보다, 우리가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의식이나 가치관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속담처럼 역사도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그러면, 우리는 역사를 어떤 눈으로 보는가? 스웨덴 국립역사박물관의 "스웨덴의 역사(Sveriges Historia)"에선 그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비교할 수 있다. 우선 우리의 역사관을 위키피디아의 "한국의 역사" 정의를 통해 알아보자. "한국의 역사 또는 한국사(韓國史, 영어: History of Korea)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동아시아의 한반도, 만주, 연해주 지역을 바탕으로 전개된 한국의 역사이다." 반면에, "스웨덴의 역사"의 사진에는 "before Sweden as we now know it emerged"라는 말이 있다. 번역하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스웨덴이 등장하기 전에"라는 말이다. 우리의 눈은 역사를 '지역'으로 본다. 반면에 그들의 눈은 '개념'으로 본다. 형님에 따르면 우리의 '대화'이자 '문제의식', '가치관'은, 속담으로 풀자면 돼지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지역'이다. 반면에 그들에게는 '개념'이다. 왜 그럴까?
그들은 사진의 설명에 이렇게 덧붙인다, "작은 왕국에서 시작해 European Union(EU)의 일부가 된 역사"라고. 아, 이제 이해가 갈랑말랑한다. 스웨덴은 독립된 국가이면서도 EU라는 연합체의 일부이기 때문에 '지역'보다는 '개념'으로 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역'을 중심으로 스웨덴의 역사를 해석하는 순간 이웃 국가들인 핀란드나 덴마크, 독일 등을 EU라는 공동체를 함께 구성하는 일원으로 보기보다는 스웨덴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인식하게 된다. 반면에 우리가 '한국'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과 분쟁 중인 지역이나 문화 등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 따라서,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역사의식을 갖기 때문에 '개념'보다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지역'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과 역사를 놓고 분쟁하는 이유도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까?
다른 한편으로 두 역사관 모두 오늘날 인류가 겪는 "지구 온난화"나 "환경오염", "핵전쟁"의 위협을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 국가나 지역 차원이 아니라 모든 국가와 사람들의 '전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 대응하기에는 우리와 그들의 역사관 모두 낡았다.
그러므로 지금은 역사를 다시 쓸 시기다. "카" 형님의 말에 빗대면, 새로운 '문제의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과거'와 '대화'할 시간이다. 내 식대로 말하면, 보름달을 보고 토끼나 꽃게, 소녀를 떠올리는 대신 그 대지 위에서 정말로 생활하는 인간을 꿈꿀 차례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때, 역사라는 과거의 사실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게 될까?
그 답을 내릴 순 없겠지만, 동산 위에 올라서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그려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서 '지역'이라는 관점과 다르게, '개념'을 중심으로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본다면, 저마다 '전지구적인' '문제의식과 가치관'으로 역사를 다시 쓸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국립역사박물관의 "스웨덴의 역사"관을 참고하여, 본인의 '문제의식'과 '가치관'에 따라서 역사를 다시 발견해 보자.
(그러고 보면, 책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의 저자 "타밈 안사리"는 이런 말을 참 맛있게 풀어냈다. 원제인 "The invention of Yesterday"라니, 선생님 말씀에 한 번 더 감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