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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Sep 24. 2023

스웨덴 이민 1년 1개월의 기록 - 가을

그리고 겨울

가을!

하늘은 푸르고 날은 한결 선선하기에 내딛는 발걸음, 걸음마다 가벼운 시기죠.

반면에 하루하루 해 넘어가는 시간은 빨라지고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 어딘가 허전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가을은 더욱 극적입니다.

백야에서 극야로 넘어가며 밤 10시까지도 밝던 해가 6시면 저물기 시작해요.

문득, 다가올 겨울의 칠흑 같은 밤이 떠오릅니다.


극야(極夜)! 그것은 죽음과도 같아요.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매일매일 빨라지는 일몰이 상기시킵니다.

저 줄어든 햇볕과도 같은 정해진 순리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어요.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렇습니다.

가을을 맞이한 우리는 모두 겨울이라는 죽음을 향해 다 같이 걸어가는 중이에요.

그 피할 수 없는 절망이 때론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어둡고 추운 겨울은 그저 고통과 인내의 시간아니에요.

곁의 사람들, 그리고 가장 깊고 짙은 밤을 밝혀주는 크리스마스가 있고요.

반짝이는 트리 밑에 놓일 선물들과 함께 기뻐할 미소도 떠오르네요.


죽어가는 나는, 또 다른 죽어가는 존재들과 부대끼며 겨울을 맞이합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한참은 더 많을 겨울을 보낼 누군가도 태어날 거예요.




한 번의 겨울을 온전히 보내고 나서, 나는 이 사람들의 냉소적인 태도에 친숙해졌어요.

매 겨울을, 매년 죽음을 맞이하는 이곳에서 생은 얼마나 자주 우리 곁을 떠나는지요.

죽음은 결국 끝입니다.


그럼에도, 봄은 돌아옵니다.

모진 겨울은 영영 떠나 버린 양 돌아와,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반겨줄 거예요.

 번의 봄을 온전히 맞이하고 나서, 이 사람들의 장난스러운 유머에도 친숙해졌어요.


사람들, 혼자라면 버티지 못했을 무게를 덜어준 들과 함께하기에 더욱 빛납니다.

저마다 다른 삶의 길목들, 죽음으로의 여정들이 서로를 보듬어줘요.

그렇게 고통이 웃음으로 변하는 순간, 가슴이 가벼워집니다.




차가워진 가을바람 속에서 겨울이 또 한 번 찾아오고 있어요.
쉽지 않겠죠. 힘들겠죠.

삶은 또 한 번의 시련을 줄 겁니다.


그렇기에 살아보싶습니다.

신기하?

 삶은 내가 아닌 이들 덕분에 살아볼 맛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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