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며칠 앞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한 아침, 나는 그렇게 전배를 통보받았다. 예상했냐고? 아니, 요만큼도 못했다.
"네에?"
"우리 사업부에서 메모리로 인력이 전환배치될 것 같은데 D님이 포함되셨어요."
5분 정도 말을 더 나누며 상황파악을 해보니, 이미 이건 결정된 사항이라 회사 다닌 지 고작 2년을 채운 신입사원 티도 다 못 벗은 나부랭이 따위가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래, 이것은 팀장인 S상무, 아 그때 즈음엔 승진하셨던 것 같으니 S전무가 일개 사원에게 내리는 지시사항이었다.
"되돌릴 수는.."
말을 이어나가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안색이 굳어진다.
"없는 거군요. 네."
'허'
어이가 없지만, 머리는 차분하게 상황판단을 한다.
눈앞의 S팀장 님은 곧 아저씨가 된다.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다 알지 않는가? 복무 중에나 별 단 장군님이지 전역하고 나면 그냥 배 나온 옆집 아저씨다.
그렇지만 또 전역날까지는 그 아저씨만큼 조심해야 할 사람도 없다. 그렇기에 이 얼척없는 마음을 좋게 좋게 드러낼 말을 고르고 고른다.
"아쉽네요."
그의 굳어진 표정이 풀린다. 예상외의 대답이었던 걸까?
"저 정말 열심히 일 했거든요. LSI 지원할 때부터 메모리도 쓸 수 있었는데, 뭔가 여기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서 메모리 안 쓰고 여기 썼었거든요."
(내 자랑 같겠지만, 내 자랑 맞다. 학부 때도 붙었던 LSI를 석사를 하고도 똑같이 다시 쓴 이유가 있다. 그런데 네가 나를 이렇게 버려? 나 버리고 잘 되나 보자? 그리고 나 너 아니어도 잘 지낼 거거든?)
"이렇게 될 줄 몰랐네요, 이럴 줄 알았다면 진짜 그냥 메모리 쓸걸."
(이건 자랑 아니다. 넋두리다. 찐 후회를 담은.)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눈가가 벌게진다.
"나도 이런 얘기하기 정말 익숙하지 않은데, 정해진 거라서..."
뭐 이런 얘기를 15분 안 되게 나눴던 것 같다. 당시에는 머리 꼭대기까지 열이 차올라서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이때 사실 신입따리가 말을 섞기도 힘든 엄청 윗분한테 감정을 너무 대놓고 드러낸 것 같아서 죄송했다. 근데, 그 당시엔 그냥 뭐 같은데 뭔 생각을 했겠나?팀장실을 나온 뒤 바로, ㄱ그룹장 님을 찾아가 면담 요청을 했다.
지금도 마음속에는 ㄱ그룹장 님에 대한 리스펙이 담겨 있다. 그분이 진실되고 옳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삼성전자란 회사에서 20년 넘게 살아남은 사람의 정치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면담을 요청할 때의 그 '뭔 일이래' 싶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잊지 못한다.
"왜, 뭔 일인데 그래요?"
회의실 유리문을 닫으며 그가 말을 건넨다.
참고로 내가 일했던 DSR 타워의 회의실들은 대부분 유리벽으로 되어있다. 사람의 눈높이 정도부터 불투명한 테이프로 가린 구조라, 내부를 보기 위해서는 키 큰 사람이라면 까치발을 조금 들거나 나 같은 경우에는 허리를 팍 숙여서 확인하곤 했다. 가끔은 그 유리벽에 보드마카로 이것저것 적어가며 회의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회의실 특유의 뭔가 답답하면서도 기분을 가라앉히는 냄새나 작게나마 두런두런 들리는 외부 소음이라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왜 저예요?"
그의 얼굴에 떠오른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
그 표정을 보고 난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S팀장 선에서 정했나 보네."
할 말이 없었다. 모르셨다는데 뭐 더 할 말이 있겠나. 그냥 알겠다고 하고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회의실을 나왔던 것 같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부하직원의 이동에 관해서 파트장도 아니고 그룹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몰랐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만큼 회사가 돌아가는 생리를 몰랐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자는 근시안적인 마인드였고, 그리고 그 짧은 생각이 지금에 와서는 고맙다.
이별이 길어질수록 좋을 게 없다. 깔끔하게 딱 끝내버리는 편이 헤어지는 쪽이나 헤어짐을 당하는 쪽이나 편하다.
구구절절 내가 왜 전배인원으로 선택되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등등 말해봐야 결국엔 위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르게 된다.
그는 그런 삼성에서 그룹장이나 되는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나처럼 회사 생활 3년 반하고 때려치운 낙오자가 범접할 수 없는 연륜을 쌓았다. 그리고 그가 내린 그 "모른 척"이란 결정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되돌아보니 햇병아리 같은 신입, 그리고 떠나보내야 하는 조직장 둘 다에게 최선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정말 모르셨을 거라는 어설픈 믿음을 지나,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거라는 충격과 배신감이 어느 정도 사그라든 뒤, 메모리 부서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나서야 큰 그림이 어느 정도 보였다.
시작은 분명 한참 윗 선에서 결정된 사항이었을 것이다. 조 단위의 손실을 기록한 적자사업부와 "슈퍼사이클"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흑자사업부가 있다. 그런데, '두 사업부 모두에서 비슷한 일을 하는 직군이 있네? 거기다가 흑자사업부에서는 걔네 일손이 모자라다고 난리네? 그러면 저기서 요만큼 뚝 떼다가 여기다 놓으면 적자는 감소, 흑자는 증가하겠네'와 같은 철저하게 합리적인 논리에 따라 결정되었으리라.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다른 팀에서는 지원자를 받고 그중에서 뽑았다고 한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해당자와 면담이라도 해서 의사정도는미리 확인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S팀장 님은 애플 출신의 아메리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었고, 다음날 출근 시 출입이 안 될 때에서야 해고되었음을 알게 되기도 한다는 실리콘 벨리의 선진문화에서 온 분에게는 말단사원과 면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관대함이자 타협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렇게 자리로 돌아와 앉았고, 동기들에게, 파트원들에게, 지인들에게 내 상황을 전했다. 누구는 "안 됐다"라고, 누구는 "잘 된 거 아냐?"라고, 누구는 "와, 내가 가고 싶었는데"라고까지 말했었다. 당시에는 그 말을 들으니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아니, 저런 사람 놔두고 굳이 잘 다니고 있는 사람을 보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남 일처럼 보게 되자 그분들이 하신 말이 나를 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이었음을 알게 됐다. 적자에 PS, PI 걱정을 하는 곳에서 PS, PI는 물론 특별보너스까지 챙겨주는 사업부로 가는데 금전적으로 보면 잘된 일이니까. ㄱ그룹장 님은 그래서, "집이 가난해서 부잣집에 자식 보내는 느낌"이라는 둥의 말을 하시기도 했다.
당시에는 정말 원망스럽고, 짜증 나고, 스트레스 이빠이받는 일이었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지나고 보니 내게 있어 가장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였다. 메모리 사업부에 와서 내뱉었던 섣부르고 어리석은 말 한마디들이 쌓여 아주 그냥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서, 나머지 1년 반동안 굴러온 돌 취급을 톡톡히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저질렀던 실수들이 나중에 스웨덴에서 직장 문화에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
그래서 사는 게 참 재미있다. 당시에는 최악의 순간들이 지나고 나서 보면 최고의 선택이 되기도 하고, 최고의 순간이 지나고 보면 떠올리기도 싫은 고통의 시작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