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점: 7/10
- 한 줄 평
크리스퍼가 서 말이여도 꿰어야 보배.
- 내용 정리
유전체 편집 기술, 그중에서도 특히 크리스퍼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은 1부에선 크리스퍼라는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2부에선 유전체 편집 기술의 역사와 발전에 대해서 다룬다. 3부에서는 크리스퍼 아기와 생식 세포 편집 논란 및 그 의미를 정리한 뒤, 4부에선 크리스퍼 기술의 미래가 어떻게 나아갈 지로 마무리한다.
다만, 최신 과학 기술부터 유전체에 관한 전반적인 지식, 기술에 관한 특허 분쟁, 크리스퍼의 미래와 사회적인 논의 촉구 등 너무 많은 주제를 한 권에 담느라,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엮어내지 못했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번뜩이는 지혜가 담긴 문장들이 곳곳에 담겨있었다. 전반적으로 흐름을 잡아가며 읽기는 어려웠지만 순간의 문장들에 자꾸 감탄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서평은 번뜩이는 문장들로 마무리하고 싶다. 우선 내용 정리는 하고 싶은 말이 많던 저자의 의도가 담긴 목차로 마무리한다.
1부.
1장. 크리스퍼 열풍
2장. 한 수 위
3장. 영웅들
4장. 델마와 루이스
5장. DNA 수술
6장 꿈의 구장
7장. 수상 경쟁
2부
8장. 유전체 편집 이전 시대
9장. 구원인가, 재앙인가
10장. 유전자 치료의 흥망성쇠
11장. 하루아침에 찾아온 성공
12장. 당신을 고쳐 줄게요
13장. 특허 출원 중
3부
14장. #크리스퍼아기
15장. 신화에서 온 소년
16장. 되돌릴 수 없는 첫걸음
17장. 더럽혀진 잉태
18장. 경계를 넘어 생식세포로
19장. 규칙을 저버리다
4부
20장. 멸종, 그 이후
21장. 농업의 보조 기술
22장. 크리스퍼의 전성기, 프라임 편집
24장. 만루
- 감상 1: 크리스퍼 환원주의 경계
크리스퍼를 비롯한 유전체 편집 기술을 다룬 책이기에, 모든 문제를 유전체 편집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하지만,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에서 배웠듯, 자아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후성유전학, 미생물총, 환경 등 다양한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또한, 책에서 다룬 멸종이나, 농업, 의학 등 많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크리스퍼 기술이 쓰일 수는 있겠으나,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진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우선, "모든 문제를 크리스퍼로 환원하여 바라보는 시각을 조심하자"는 말로 감상부를 시작한다.
- 감상 2: 어떻게 크리스퍼를 바라볼 것인가?
크리스퍼는 분명 강력하고 혁신적인 도구다. 이 새로운 도구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앞으로, 유전체 편집 기술은 점점 더 대중화될 것이다. 언젠가는 라식 수술이나 성형 수술을 받는 것처럼, 병원에서 일상적으로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우리는 크리스퍼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저자는 이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해서 명확히 답했다.
겸상 적혈구 질환이나 얀센형 골간단연골 등 희귀 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쓰여야 한다. 하지만, IQ나 기억력, 멋진 외모 등을 특정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쓰지는 말자. 저자의 주장을 내 식으로 풀어보면, 고통을 줄이는 치료법으로써의 크리스퍼 기술 사용에는 찬성한다. 그러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술로 쓰이는 사례에는 반대한다. 그런 수술들은 더 높은 성취를 위해, 나아가 결국 자존감을 위해 필요한 수술이다. 그러나, "마음 챙김"에서 배웠듯, 우리에게는 자존감보다는 자기 자비가 필요하다. '완벽'한 자신을 추구하기보다는 이미 '완벽'한 자신을 수용하자.
- 감상 3: 좋은 게 좋은 거죠?
책을 읽는 도중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깨달은 점을 하나 적는다. 좋다와 좋아하다는 다르지만, 난 일상에서 이를 자주 착각했다. 좋은 일이지만 좋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유익하지만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런 책을 읽는 경험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술을 좋아할 수는 있으나, 술이 건강에 좋지 않을 수 있다. 좋다와 좋아하다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좋은 일과 좋아하는 일을 착각해 왔다. 어려운 책 읽기가 좋은 일이기에, 내가 그것을 좋아한다고 착각했다.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을 자체를 좋아하기보다는, 그 결과를 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독서 모임에 참여한 뒤에야 비로소 독서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직업적인 면에서는, 좋은 일이 아닌 좋아하는 일을 아내의 친구와의 대화 덕분에 찾을 수 있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나는 문제를 파악하고, 시도와 실패 과정을 거쳐 해결책을 찾아내는 과정을 즐거워한다. 그렇기에 전자과 과목 중, 디지털 회로 설계라는 내가 좋아하는 과목을 정해서 더 깊이 공부했고, 운 좋게 그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 감상 4: 좋아하는 게 좋은 거죠.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던 점이 하나 있다면, 크리스퍼 기술이 발견되기 이전에 세균과 바이러스를 연구하던 기초 과학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기초 과학을 지원하는 사회 덕분에, 실용적이진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아내의 친구도 그랬다. 영상 편집 쪽 학과를 나온 뒤, 차와 커피를 좋아하기에 바리스타로 살아가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난, 오히려 그 친구를 보면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며 행복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친구의 미소를 바라보다가, 학점과 취업이라는 좋은 일에 목을 매고 살아가는 내가 오히려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하루는 그의 하루처럼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좋은 일보다는 좋아하는 일에 초점을 두고 하루를 채워나갔다. 다양한 전자과 과목들 중에서, 학점을 따기 쉽거나 취업에 유익한 과목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인지 찾았다. 그 덕분에 운 좋게, 지금은 좋아하는 일이면서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기초 과학자들이나 그 친구의 사회와는 달리,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회로 나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선을 넘어서는 혁신의 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했던 기초 과학자들이 없었다면, 유전체 편집 기술이라는 혁신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사이먼스가 돈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메달리온 펀드이라는 혁신이 있을 수 있었을까? 혁신은 좋아하는 일에서 온다. 좋은 일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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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3 원문 작성]
[2025/11/16 편집 후 재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