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은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다
하산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무릎이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더 아프다는 것, 정상에서 마신 물이 어느 물보다 맛있다는 것
이런 것들은 미리 알고 있어도 실제로 겪을 때마다 새삼스럽다. 그리고 또 하나, 풍경이란 것이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다르게 보인다는 것. 같은 나무와 같은 돌과 같은 사면인데, 방향이 바뀌면 전혀 다른 그림이 된다.
산에 오르는 일을 오래 해온 사람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나는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 올라갈 때마다 내려오는 것을 약간 잊고, 내려올 때마다 올라갔던 것을 약간 잊는다.
출발은 이른 아침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산화 끈을 다시 묶는데 손이 조금 떨렸다. 추워서인지, 아니면 그냥 아침이라서인지. 구분할 이유는 없었다.
입구에서 안내판을 봤다. 정상까지 삼 점 이 킬로미터, 예상 소요 시간 두 시간 삼십 분. 숫자는 언제나 무섭게 간결하다. 그 두 시간 반 안에 들어 있는 것들
허벅지가 타들어 가는 구간,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 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지점에서의 잠깐의 망설임
그런 것들은 숫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초반 구간은 완만했다. 흙길이 잘 다져져 있었고 나뭇잎이 쌓여 발소리를 죽였다. 앞서 가는 사람의 등산 스틱이 규칙적으로 땅을 짚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딱, 딱, 딱
그 사람의 리듬이 어느 순간 내 호흡과 겹쳐지면서, 이 사람도 나와 같은 속도로 숨을 쉬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에 오르는 일은 그런 면에서 묘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낯선 사람과 일시적으로 같은 리듬을 공유하게 된다.
중턱을 지날 무렵 나무가 낮아졌다. 키 큰 소나무들이 어느 지점부터 작은 관목들로 바뀌는데, 그 전환이 일어나는 정확한 경계는 걸으면서는 포착하기 어렵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이미 바뀌어 있다.
바람이 세졌다. 옷깃을 여몄다. 앞서 가던 사람은 어느 틈에 사라지고 없었다. 길은 경사가 심해지면서 돌계단이 시작됐는데, 계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만큼 크고 불규칙한 돌들이었다. 이것을 계단이라고 부르기로 누군가 처음 결정한 것이 언제였는지, 한 발 한 발 오르면서 이상하게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숨이 찬 것과 숨이 막히는 것은 다르다. 어느 지점부터는 그 차이가 점점 흐릿해진다.
쉬는 것이 맞는지 계속 가는 것이 맞는지, 경험이 쌓여도 매번 헷갈린다. 쉬면 몸이 식고, 계속 가면 다리가 굳는다.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닌 것들이 산에는 많다. 적당한 바위 위에 앉아서 물을 마셨다. 내 위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꺾이고 또 꺾이는 사면이, 위에서 보면 완만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정상에는 표지석이 있었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것으로 높이는 대략 가슴 정도, 이름과 해발고도가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한 사람이 찍고 나면 다음 사람이 자리를 채웠다. 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찍었다.
사진 속의 나는 조금 낯설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었고 볼이 붉었다. 이것이 지금의 나라는 것은 알겠는데, 이 얼굴이 두 시간 반 전 주차장에서 등산화 끈을 묶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잠깐,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상에서의 시야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더 넓기도 했고 더 막막하기도 했다. 능선들이 겹쳐 있었고 그 아래로 도시가 있었다. 건물들이 이 거리에서는 그냥 회색 덩어리처럼 보였다. 아까 내가 차를 댄 주차장이 어디인지는 찾을 수 없었다. 찾으려 해도 구분되지 않았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지형도 위의 등고선처럼 납작하고 조용하다.
오래 있지는 않았다. 정상이란 원래 그런 곳이라고 생각한다. 오르기 위한 목표이지만, 실제로 도착하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 평평하지 않고, 바람이 강하고, 사방이 트여 있어서 오히려 불안정한 느낌이 든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와 같은 길이었지만 달랐다. 발이 닿는 각도가 다르고, 무게가 실리는 방향이 다르고, 보이는 것이 다르다. 올라올 때 지나쳤던 나무 한 그루가 내려갈 때는 처음 보는 것처럼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같은 나무인데, 방향이 바뀌면 처음 보는 것처럼 된다.
무릎이 욱신거리기 시작한 것은 중턱을 지나면서부터였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충격이 무릎을 통해 올라왔다. 속도를 줄이고 발을 옆으로 비스듬히 놓으며 내려왔다.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무릎에는 그편이 낫다.
산에서 배우는 것들의 상당수는 이런 종류다
더 나은 방법이 빠른 방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하산 중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여럿 지나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직 가야 할 거리가 남아 있다는 어떤 표정이 있었다. 뭔가를 향해 가는 사람 특유의,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표정. 나는 그게 조금 부러웠다. 동시에 내가 이미 그 시간을 지나왔다는 것이, 이상하게, 약간 아쉬웠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다리가 풀렸다.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가방을 던지고 운전석에 앉았다.
등받이에 기대자 등 전체가 축 가라앉았다. 그냥 그 자세로 한동안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오른 것과 내린 것이 각각 어디인지, 차 안에서 창밖을 보아도 구분되지 않았다. 산은 거기 그대로 있었고, 나는 이쪽에 있었다. 무릎은 여전히 욱신거렸고 어깨는 뻐근했다. 손등에 땀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이상의 의미를 얹을 필요가 없었다. 산에 올랐고 내려왔다. 풍경이 좋았고 다리가 아팠다. 물이 맛있었고 바람이 강했다. 사진 속의 내 볼이 붉었다.
정상의 표지석은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다음 날 무릎이 아픈 것이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