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조끼가 하는 일
출고 팀은 층으로 나뉜다.
2층은 포장팀. 3층은 집품팀. 물건이 위에서 골라져 내려오면 아래에서 포장이 된다. 그 흐름이 맞물려야 출고가 굴러갔다. 나는 2층이었다. 포장과 부자재를 담당하는 파트. 빨간 조끼를 입고 2층과 3층 사이를 오갔다.
관리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 처음에는 잘 몰랐다. 일을 잘 하는 것과 일이 굴러가게 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나는 후자를 배우는 중이었다. 현장이 조용한 날은 없었고, 조용한 날에 대비하는 여유도 없었다. 그냥 매일 그날의 일이 왔다.
어느 날 3층에서 내려온 팀원이 울고 있었다.
내 팀 인원이었다. 그날 3층에 올라가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려오는 얼굴이 젖어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어떤 남자가 계속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쪽지도 줬다고 했다. 자기를 보는 시선이 무섭다고 했다.
짜증이 확 올라왔다. 무섭다는 말이 진짜로 들렸다. 그 말이 들리면 더 생각할 것이 없다고 느꼈다
그때는 그랬다. 다르게 볼 여지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에는 다르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3층 선임에게 전화했다. 상황을 말했다. 처리해달라고 했다. 따지는 쪽에 가까웠다. 선임이 알겠다고 했고,
그 남자는 결국 경위서를 쓰게 됐다. 잘 처리된 것인지는 지금도 완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그 팀원이 그다음 날 다시 3층에 올라갔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올라가는 뒷모습을 봤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이 다를 때가 있다. 그날은 둘이 같다고 생각했다.
매니저가 출근을 안 한 날이 있었다.
다른 부서 허브 쪽과 협업이 잡혀 있었다. 출고 물량과 부자재 입고 일정이 겹치는 구간이 있었고,
그걸 조율해야 했다. 그런데 진행하다 보니 우리 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상황을 제대로 읽은 건지 아닌지는 그때도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다.
매니저에게 전화했다. 받았다. 쉬고 있는데 왜 전화하냐고 했다.
잠깐 아무 말도 못 했다. 지금 돌아보면 매니저 쪽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현장이 돌아가고 있고, 협업 건이 틀어지고 있고,
지금 통화가 안 되면 내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쉰다는 말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내가 처리했다. 허브 쪽 담당자와 다시 얘기했다.
어느 부분이 왜 불합리한지 설명했다. 조율이 됐다.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 없다는 것이 일을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게 된다.
그날 팀원들이 조퇴를 하겠다고 했다.
여섯 명이었다. 한 명이 꺼낸 말이 퍼졌다. 이유는 다들 달랐다. 몸이 안 좋다, 개인 사정이 있다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묘했다. 허브 쪽 협업 건이 틀어지면서 추가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이 생긴 직후였다. 그 일이 하기 싫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확신은 없다. 물론 진짜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만 그때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득을 했다. 한 명씩 따로 얘기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 사람이 빠지면 나머지가 어떻게 되는지.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화를 낼 여유도 없었다.
그냥 상황을 설명했다.
부서 간 조율은 계속 진행 중이었다. 한쪽 귀로 허브 담당자 말을 들으면서,
다른 쪽으로는 팀원 눈치를 봤다. 그게 같은 시간 안에 있었다.
결국 다 남았다. 조퇴한 사람은 없었다. 일은 마무리됐다.
그날 퇴근하고 뭘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지쳐 있었다는 것만 남아 있다.
관리자가 하는 일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는 것이다. 그게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 시절의 하루들이 가끔 생각난다.
울면서 내려온 팀원, 전화 너머의 쉰다는 목소리, 조퇴하겠다는 여섯 명.
당시에는 그냥 그날의 문제였는데
지나고 나면 그게 전부 빨간 조끼를 입고 배운 것들이었다.
내가 제대로 판단한 것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때 다르게 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게 맞는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것인지 아직 구분이 잘 안 된다.
잘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