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배운 것처럼 형상화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미'를 '객관화하고 구체화'하는 작업입니다.
‘시적 형상화’란 다른 문학 장르와 구별되는 시의 특징을 형상화에 반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해, ‘시적 형상화’란 아름다움(美)을 ‘시답게 형상화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답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의 첫출발’부터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문학이 어디에서 기원했다고 생각하세요?
여기에 대해서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저는 문학의 기원을 노래하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언어가 정교하지 않았던 시절, 고대인들은 중요한 내용을 그림이나 ‘외우기 쉬운 언어(입말)’로 공유하고 후세에 전달했을 겁니다. 바로 그 ‘외우기 쉬운 언어 형태’가 노래이고요. 학습 내용을 암기할 때, 노래 가사를 개사해 본 경험 있죠? 악기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나무나 돌을 두드리는 타악 리듬에 맞춰 입말로 그들의 역사, 부족의 가치, 사냥의 성공 등을 부르고, 공유하고, 전달했다고 볼 수 있죠. 마치 오늘날의 랩 음악처럼요. 드랍더 비트 아시죠?
시를 ‘누군가(화자)’가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사건’을 겪고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 감정’을 ‘압축된 언어’로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할 때, '압축된 언어'라는 말은 바로 이 노래와 관련된 것입니다.
'입과 입을 통해 전달된다.'
수업 시간에 배운 ‘구전(口傳)’입니다. 그런데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이렇게 누대에 걸친 구전 과정에서 노래는 많은 변화를 겪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시대적 필요에 따라, 때로는 좀 더 흥미 있는 이야기를 위해 구전하는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가 탄생했을 것이고, 이를 예술의 창작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예술의 처음을 노래로 볼 수 있는 거죠.
만약 한 부족의 역사를 노래로 구전한다고 해봅시다. 그 영웅은 부족원들을 모으고 영토를 넓히면서 여러 사건을 겪었을 겁니다. 그리고 각각의 사건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가졌을 테고요. 한 덩어리로 뭉쳐져 거친 리듬 속에 읊조림의 형태로 전달되던 노래(=서사시)는 문자가 발생하고, 문학이 점차 세분화되면서 사건을 더 중심에 놓은 소설(서사문학)이 되고, 영웅이나 영웅과 관련된 생각과 감정은 시(서정문학)가 되었을 겁니다. 후대에 그 영웅의 모습을 무대에서 재현(극문학)해 볼 수도 있었을 테고요.
이제 다시 시로 범위를 좁혀보겠습니다.
우선 동요 하나를 볼까요?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수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구슬비>라는 동요입니다. 저는 시가 무엇인가?라고 생각할 때마다 이 동요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시답다고 할 때 가장 시다운 모습이 이 동요에 있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시의 3요소가 무엇인지 기억나세요? 매번 시 첫 수업 시간에 배우고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데...’로 머릿속에만 머무는 것. '시답다는 것'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 요소를 잘 갖춘 것이란 뜻이고, 그 요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시의 3요소입니다.
주제(=의미적 요소), 심상(=이미지, 회화적 요소), 운율(음악적 요소)
고대인들의 노래에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었을 겁니다. 그것이 시의 의미적 요소가 되는 거죠. 그리고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잘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영웅이 겪은 일들을 눈앞에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이는 시의 회화적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어야 하고,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구전되어야 하므로 리듬감을 갖춘 노래 형식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시의 음악적 요소가 되는 거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 요소가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하나의 큰 의미 덩어리를 형성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때 영웅의 이야기는 부족민들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재현되고 부족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압축적 언어'란 바로 이 세 요소의 유기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시에는 주제의식이 운율감 있는 언어로 이미지화되어 표현됩니다.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미가 공유하고 전달하기 쉬운 언어의 형태를 빌어 우리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되는 것이죠. 이 결합을 통해 간결하게 그러나 가장 적절하게 가치 있는 내용(=미)을 공유하고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압축적 언어' 표현이 바로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슬비>라는 동요는 40년 전쯤 배운 노래인데, 지금도 한두 군데 빼고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알송알' 하고 노래를 부르면 정말 풀잎이나, 거미줄에 매달린 동그란 구슬비가 떠오르고요. 그리고 제 마음도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보다 훌륭한 시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싸리잎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마치 이럴 거야 하고 그려지지 않나요?
시의 3 요소를 고려하며 형상화 작업을 하는 것을 ‘시적 형상화’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시가 다른 문학 장르와 구별되는 지점이 바로 ‘시적 형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주제, 심상, 운율을 고려하며 자신이 탐색한 미를 형상화하는 것이 시적 형상화인 거죠.
문학은 언어를 통해 미를 표현하는 것이고, 시는 위의 세 요소가 잘 나타나도록 언어를 부려 쓰는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고른 단어가 시의 주제의식을 잘 담아낼 수 있는지,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리듬감이 보다 잘 느껴지는지, 드러내고자 하는 이미지가 잘 그려지는지를 고려하는 거죠. 그래서 시의 언어, 즉 시어는 함축성, 음악성, 형상성을 지니게 됩니다.
함축성이란 사전에 풀이된 의미 외에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한 부족의 영웅을 떠올려봅시다. 그는 위기 앞에서는 용감했고, 부족원들에게는 자애로우며, 어려운 결정 앞에서는 지혜로웠을 겁니다. 이런 모습을 하나씩 열거할 수도 있지만 그러다 보면 기억하기 힘들거나 특정 한 부분만 강하게 각인될 수 있습니다. 좋은 방법은 이런 모습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겁니다.
강물
그는 굽이치는 계곡과 큰 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갔으며, 때로는 잔잔한 물결로 사람들의 필요에
응했으며, 막힌 물길 앞에서 반드시 활로를 찾아 끊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강물이란 시어에는 용기, 자애로움, 지혜로움 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겁니다.
형상성이란 시를 읽으면 머릿속에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때론 거칠고, 때로는 자애로운 영웅이 모습이 강물의 이미지와 겹쳐진다면 이 노래는 잘 만들어진 노래이고 후대에 계속 전해질 것입니다.
음악성이란 규칙적인 소리의 반복이나 시어의 배열을 통해 리듬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영웅이 달릴 때 어떤 소리가 어떻게 반복되었는지 고민합니다. 영웅이 어린아이에게 보이는 웃음은 '동글동글'한 지 '둥글둥글'한 지, '해사'한 지, '해사 시' 한지 고심합니다. 그리고 시행과 연의 길이나 배치가 만들어 내는 리듬감을 고치고 또 고치는 거죠.
이런 수없는 고심과 고침 끝에 시어와 시어는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이는 비유와 상징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꽃을 피웁니다. 시를 어떻게 써나갈지(=시상 전개)를 결정한 시인은 이처럼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며 시어를 조탁하고 시행과 연의 길이와 배치를 조정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시들은 이런 일련의 작업들의 총체입니다. 더러는 이들 중 무엇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 넘치기도 하고 또 그저 균형만 맞추어 밋밋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편 한 편의 시들은 누군가의 고심이고 땀방울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남몰래 수줍게 일기장에 쓴 새벽 시들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시를 만나더라도 한 번쯤은 정성 어린 마음으로 이 시들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진심을 대하는 기본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만나는 시들은 이런 요소들의 쓰임과 배치가 적절하고 조화롭다고 많은 이들이 인정한 시들입니다. 물론 이 중에도 어딘가 부족하게 보이거나, 이런 면이 좋다는데 나는 전혀 모르겠다란 시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선 그것이 왜 그런지를 이해하고 나서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또 한편으로는 나는 잘 안 보이는 무엇을 남들은 이렇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뭐지? 정말 그렇게 보는 게 옳은 걸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면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색다른 재미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예. 압니다. 그래도 쉽지만은 않겠죠?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시를 이해하는 또 다른 팁 하나를 드리려고 합니다. '역사와 시'라는 꼭지로 여러분들에게 시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드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아래 글로 이번 꼭지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고대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른 것은 꼭 전달할 중요한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심심했을 테니까요. 아니, TV도 영화도 심지어 책도 없던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심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상상을 통해 무료함을 달래는 것처럼 그들도, 지금보다 훨씬 반짝였을, 밤하늘의 별을 보며 멋진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웠을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 무지했던 그들은 저 산 너머가 무섭고, 몰아치는 눈보라가 무섭고, 칠흑 같은 밤 부스럭 거리는 작은 벌레 소리에도 가슴 떨려 잠 못 이루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노래는 위안이었을 것입니다. 두려워 떠는 아이를 어루만지는 엄마의 손길 같은 노래를 같이 나누며 우리의 선조들은 두렵고 무서운 밤을 견뎠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시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알쏭달쏭한 세상과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하루하루 때문에 막막하고 두려울 때, 무엇보다 스스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 '나 자신'으로 인해 막막하고 불안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