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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피free dompea ce Nov 21. 2022

돈호(豚狐), 돈오(頓悟) - 2화

매거진 Moon 12월 호 연재 소설

  그러나 대학에도 사람이 있진 않았다. 

  푸른 잔디밭에는 밤이면 쥐들이 뛰어다녔고, 대학 본부가 자리 잡은 그 대리석 건물에는 졸업 때까지 몇 번 들어갈 일도 없었다. 껌들이 다닥다닥 말라붙은 도로에는 해사한 봄 햇살 대신 전공과 영어 점수를 위해 뛰어다니는 한 마리의 돼지가 있을 뿐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그들은 겉으로는 친근하고 솔직한 듯했지만 진짜 속마음은 내보이지 않았다.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며 살갑게 손을 내밀지만 눈은 내 뒤쪽에 걸린 벽시계를 보며 다음 일정을 생각하는 사람을 마주 보는 느낌이랄까, 그들이 나를 돼지로 보는지 사람으로 보는지, 그들이 나를 제대로 보기나 하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면서 얼굴을 뒤덮고 있던 털이 없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얼굴을 더욱 기괴하게 만들어버렸다. 사람의 피부에 돼지의 이목구비였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래도 두세 번의 연애와 군대, 취업, 대리 승진을 거치는 동안 그것은 차츰 사라져 갔다. 눈꺼풀이 원래대로 말려 올라가고, 심하게 튀어나온 주둥이는 입으로 변했다. 대리가 된 지난해 코와 귀를 빼고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잡았다. 돼지로 변한 것이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다시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끔 조급증이 엉덩이를 두드렸지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제자리를 잡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귀와 코였다. 이번 노사분규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코가 제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제 귀만 남았다.       


  지난밤 박 과장이 오피스텔로 찾아왔었다. 그가 나를 찾아왔다는 것을 아무도 몰라야 했다. 내 속의 돼지가 요동치면서 토악질이 밀려왔지만 나는 침착해야 했다. 자칫 그에게 적으로 찍힐지도 모른다. 친구가 없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적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위를 주도하는 그였지만 그를 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아니 시위 주도자이기에 더더욱 그를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와 내가 만난 것 역시 누군가 알아서는 안 된다. 침착하게 행동해야 했다. 


  “그때 자네가 우는 것을 봤어.”

  사들고 온 맥주와 오징어를 앞에 두고 그는 지난겨울의 연탄배달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것이 한 대리의 진심이라고 생각해.”     


  회사에서 일 년에 한차례씩 있는 사회봉사 때 그와 나는 산동네 연탄배달을 나갔었다. 그가 우리 부서의 봉사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는 일을 했다. 우리 둘이 마지막으로 동네의 가장 꼭대기 집에 배달을 나갔었다. 시간은 이미 다섯 시 가까이 되었었고, 몸도 많이 지쳐있었다. 연탄을 가득 실은 리어카를 그가 앞에서 끌고 내가 뒤에서 밀면서 오르막을 올랐다. 그러나 오르막길 마지막 집은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현관문 대신 그 옆에 난 작은 문을 열었다. 그곳은 양변기가 놓인 화장실이었다. 아니 화장실이긴 한데 양변기 너머 너른 공간에 연탄이 몇 장 놓여있었다. 전에도 몇 번 배달 경험이 있는 그가 화장실을 넓게 만들어 창고처럼 쓰기도 한다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그 안에다 연탄을 쌓았다. 양변기는 모양일 뿐이고, 그 밑에는 배설물이 쌓여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냄새를 참아가며 일을 마쳤을 때 나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은 우리는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담배를 피웠다. 한숨을 돌린 그는 현관문을 슬쩍 열었다. 뒤에 안 것이지만 혹시 그 안에 있을지 모르는 노인이 걱정되어서였다. 현관문을 열자 신발을 벗는 작은 공간이 보였다. 집안은 방과 부엌, 거실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전체가 하나의 큰 방이었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과 같은 구조였다. 한 번도 오피스텔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그 집은 내게 낯설게 느껴졌다. 방 안에는 노파가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어느새 찾아든 어둠이 노파의 얼굴을 매만지는 풍경은 참 쓸쓸했다. 그는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처럼 방에 들어가 노파를 가만히 흔들어 깨웠다. 잠이 깊었던지 노파는 할머니하고 몇 번을 흔들고 나서야 희미하게 눈을 떴다. 잠결에 얼떨떨해 보이던 노파는 연탄배달을 왔다고 하자 오랜만에 찾은 아들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추운데 고생했다며 노파는 몸이라도 녹여야 한다며 커피를 타 왔다. 그와 노파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나는 슬쩍 밖으로 나왔다.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바닥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 마을 하천 옆 공터에, 그때는 퐁퐁이라고 부르던, 트램펄린이 있었다. 백 원을 내면 십분 정도 그 위를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딱 한 번 탄 적이 있다. 신나게 허공을 가르다 땅에 내려왔을 때 지구의 중력은 참 씁쓸했었다. 

  여섯 시 삼십 분. 이제 집으로 가서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출근시간은 아홉 시지만 나는 여덟 시 전에 사무실에 들어간다. 오피스텔에서 회사까지는 십오 분이면 충분했다. 시위대는 여덟 시 삼십 분쯤 모일 것이다. 

  지난밤 박 과장의 말들은 귓바퀴 끝의 땀방울처럼 아슬아슬하고 간질간질했다. 

  계란 한 판 위에 판자를 올려놓는다. 그 위에 벽돌을 하나씩 올려서 그 계란들을 다 깨뜨린다고 가정해보자. 계란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열 장의 벽돌이 필요하다고 한다면, 아홉 장의 벽돌을 올린다고 해도 아니 열 장에서 1그램만 모자란다고 해도 계란들은 깨지지 않을 것이다. 최대 정지 마찰력처럼 꼭 필요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을 위해서 우리의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어쩌면 지금이 1그램이 모자란 때일 수도 있다고? 작은 힘을 조금씩 조금씩 보태서 거기에 이를 수 있다고? 그렇지. 이론적으로는... 그러나 서로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인생의 꽃이 피어 열매 맺게 되는 그때까지는 열 장의 벽돌이 쌓이지 않을 거라는 거. 지금 우리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세상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데 미래를 위해서 지금 쌓는 이 힘들이 과연 그때도 의미가 있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지금 당장 바꾸자고? 과연 그런 힘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가? 만일에 그런 힘을 가진 이가 있다면 그는 과연 계란을 눌러 깨뜨리려고 할까? 잘 익혀서 먹든지 아니면 부화시켜서 돈이라도 벌려고 하겠지. 좋다. 그래 백 번 양보해서 그 계란을 깨뜨린다고 하자. 그 뒷감당은 어떡할 것인가? 흰자와 노른자가 뒤섞여 미끄덩거리는 그 진득한 액체, 그리고 조각난 껍질이 찌르는 아픔, 그 혼란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그건 또 다른 돼지우리밖에 되지 않는다. 

  연탄배달을 한 그날, 나는 울지 않았다. 그와 노파가 이야기하는 동안 나는 옆에 앉아 방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조잡하긴 했지만 세간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불이 깔려 있긴 했지만 바닥도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그 바퀴벌레만 없었다면... 급하게 자리를 정리하느라 대충 뭉쳐서 밀어둔, 노파가 누워있었던 이불속에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왔다. 어른 손가락 두 마디 정도는 되어 보이는 그놈은 밖으로 나와 긴 더듬이 한 쌍을 이리저리 막 휘두르더니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순간 손에 든 커피에 누런 바퀴벌레가 버글거렸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물건들은 조금씩 흐느적거리며 진득한 액체가 되어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리고 방 옆의 화장실에서 구린 냄새가 흘러들어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얌전하던 속이 부풀어 올라 목울대를 간질였다. 풀밭에 앉아 구토를 참고 있던 그때처럼 나는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느새 그와 노파는 시커먼 돼지로 변해 꿀꿀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방에서 나온 나는 골목 구석으로 가서 속을 게워냈다. 거듭된 토악질에도 목구멍에 걸린 그것은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속이 좀 가라앉은 듯 얼굴을 덮은 액체들을 닦고 있을 때 이제 그만 가자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내가 여린 마음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어쩌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후로 회사에서도 은근히 나를 미더워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그를 그냥 내버려 두었다. 생각의 방향을 조율하고 그 내용을 궁금해할 영역 안에 그는 들어있지 않았다.       


  “한 대리, 우리를 도와줄 수 있겠어?”

  소문은 사실이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회사의 중요한 무엇을 쥐고 있다는 소문, 그래서 2주가 넘도록 그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는, 그들이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는 말이 정말인 모양이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은 분명 윗선들을 옥죌 수 있는 것이리라. 그들은 기회를 보아 그것을 터뜨릴지 모르고, 윗선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 때문에 시간을 끄는 것일 것이다. 

  시위에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올 때 나는 그냥 가만히 그 말들을 듣고만 있었다. 사람들도 겉으로는 다들 올바름과 합리의 말로 정의를 말했지만 속으로는 내 일도 아닌 비정규직 문제에 끼고 싶지 않아 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것이 터질 거라는 말들이 나돌았다. 시위를 앞에 걸어 두고 뒤에서 그것을 터트린다, 그들은 이미 감시를 당하고 있을 테니 한 발 물러나 있는 나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부탁이 무엇이고, 그가 쥔 카드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 확신만 있으면 된다. 그것이면 회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는 내게 기다리겠다는, 오래 기다릴 수는 없다는 말을 하고 집을 나갔다.       

 

 거울에 비친 몸은 아침 햇살을 받아 뚜렷한 윤곽을 드러냈다. 그것이 보이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이 몸이다. 돼지머리에 살까지 오른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근육이 우람하게 커지지 않게 신경을 쓴 것도 그 이유다. 

  왁스는 조그만 덜어 넓게 펴서 발라준다. 머리카락은 짧은 스포츠형 보다는 길되, 귀는 덮지 않아야 한다. 와이셔츠는 맨살 위에 입되 늘 흰색을, 넥타이는 톤만 다른 파란색 계열로, 양복은 남색이나 검정을 택한다. 이삼 주에 한 번씩 금요일에는 회색 양복으로 변화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넥타이를 올리고 향이 옅은 향수를 뿌리면 된다. 

  박 과장은 양복 대신 청바지에 파란색 잠바를 입고 출근할 것이다. 나는 쿠션이 들어간 의자에 앉겠지만 그는 회사 앞 땅바닥에 앉을 것이다. 내가 사람들에게 친근한 미소를 보이는 사이에 그는 핏대 선 목으로 구호를 외칠 것이다. 

  창문으로 들어온 봄바람이 장롱에 걸린 옷들을 흔들고 지나갔다. 지난가을에 산 파란색 윈드브레이커가 검은 양복들의 갯벌에서 고개를 내밀다 바람에 놀라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검은 양복의 어깨를 검어 쥐었다. 엄혹한 어깨들에 묻힌 파란 목깃은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내 손은 양복을 꺼내려는지 들추려는지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지 못하고 그냥 멈춰버렸다. 

  거울에서 와이셔츠에 감긴 흰 손이 밖으로 뻗어 나와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나를 돌려 세운 그 손은 손가락으로 귀를 가리켰다. 고개를 늘어뜨린 귀가 살짝 흔들거렸다. 손을 들어 귀에 대니 귓바퀴는 잘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손에 감겨왔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넥타이를 끌어올렸다. 

  이제 귀만 남았다.      


<매거진 Moon> 1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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