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찌고 싶어도 그러지 못해 스트레스 받는 사람의 하소연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보자마자 "살 좀 쪄야겠다"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전에는 이 말이 엄청 스트레스였다. 원인도 모른 채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닌데 5kg 넘게 빠진 탓에 여기저기서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이러고 싶었겠는가. 부산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필라테스, 요가, 클라이밍, 발레핏(필라테스와 요가와 발레의 장점만을 모아놓은 운동)까지 3년 동안 열심히 움직여서 근육량을 늘렸을 만큼 운동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잠시 육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니, 몸 쓰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을 스스로도 잘 안다. 그러니 운동을 꾸준히 해서 근육량을 늘리고픈 마음이 나라고 없었겠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집에 올라오니 근처에 있는 필라테스를 전문으로 하는 곳은 주1회에 18만 원 정도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부산에서 소도구 위주로 가르치는 곳이라면 일주일에 세 번은 할 수 있는 비용이다). 물론 대기구 위주로 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집에 얹혀 사는 데다 집에서 가깝기는커녕 버스를 타고 30분은 가야 하며 일주일에 1번밖에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스마트폰에서 결제 화면까지 갔다가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게 할 만큼 망설이게 했다. 결국 홈트레이닝을 하자고 마음 먹었지만, 그마저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다 말다 수도 없이 반복했다. 달리기에 도전했지만 발목 인대가 늘어나 4개월 동안 정형외과에 치료를 받으러 다녔고 지금도 가끔 아프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늘려야 체중이 느는데 살이 잘 찌지 않는 체질이라 더 곤욕이다.
그래서 병원에 처음 가서 문진표를 작성할 때, 한 달에 살이 몇 kg 빠졌는지 묻는 문항을 보는 순간 놀랬다. 그동안 살이 빠져 체력이 떨어지고, 기운이 없으며, 전보다 피로감을 많이 느끼고, 행동하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리는 모습이 전부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이었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병 때문이었다니, 소름이 돋았다. 솔직히 다들 앞에서 이야기한 질문을 할 때 매번 나의 대답은 "모르겠다"였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몰랐다. 나조차 모르는데 누가 알겠나. 그런데 진료실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에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과 프리랜서가 되면 혼자 하다 보니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을 온몸에 새겼다. 맡은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로 채찍질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내버려두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공황장애까지 생겼다. 지금까지 다섯 번 정도 왔는데,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짧으면 몇 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갑자기 죽을 것 같고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을 감당해야 한다. 시간은 어찌 됐든 흘러가니까,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정말 힘든 순간이 다가와도 다 버텼지만 정신적으로 지친 나머지 생긴 마음의 병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했다. 지금까지 반 년이 넘게 약을 먹고 선생님과 상담을 하며 천천히 나아가려는 용기가 한 순간에 사라지기도,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잠시뿐이라면 잠시이지만 그럼에도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다시 오늘 병원 진료 받은 이야기로 돌아가면, 오늘은 들었을 때 웃으며 대답할 수 있었다. 처음에 놀라긴 했지만 언젠가 회복하리라 믿었던 몸이 전혀 그러지 못했으니까. 언제 다시 전처럼 건강해질지 몰라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에 왔으니까. 어느 순간 나도 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진심으로.
그리고 몇 주 전부터 식욕을 돋워주는 약을 먹었더니 전처럼 잘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나를 내버려두지 못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은 "잘 하고 있는 걸까요?" 내가 물었더니 엄청 잘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그 정도면 잘 지냈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해주셨다. 약 용량은 달라지지 않았고 20분 넘게 진료를 받았는데도 뒤에 환자가 있어서 더 못 봐주는 것에 미안해하셨다. 저번에도 그러시더니 이번에도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참 좋은 분이구나' 생각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가기 싫었는데, 역시 가기를 잘 한 것 같다. 다음 진료일은 다음 주 목요일이다. 그때까지 약 잘 챙겨먹고 무기력한 나를 달래며 어떻게든 버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