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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Oct 03. 2020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방문하다

얼마 전, 엄마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다녀왔다. 우리 동네에서도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나서야 갈 수 있을 만큼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다. 가자마자 발열 검사를 하고 손 소독제를 사용한 후 이름과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주었다. 담당자를 만나는 동안 엄마는 밖에 있는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검사를 하기 전, 발열 검사 여부와 연휴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발열 검사를 했고, 손 소독제를 사용했으며 지난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근교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물어보는 질문에 최대한 솔직하고 자세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네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하나는 간이정신건강검사(이후 간이 검사)였고 나머지는 우울증 선별 검사와 자살 척도 검사 그리고 스트레스 측정 검사였다.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처럼 문진표를 작성하듯이 간이 검사는 내가 체크 하는 동안 담당자분이 5분 정도 나갔다 들어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컴퓨터에 입력해 결과를 알아보는 동안 나머지 세 가지 검사를 한꺼번에 체크했다. 결과는 역시나 정신과에서 진단 받은 것과 비슷했는데,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왕따 당했던 일이 미제사건처럼 내 안에 '미해결 과제'로 남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남아 있고, 우울과 불안보다 공황발작 수치가 더 높으며, 강박증보다 강박성향이 높고, 정신증이라는 수치가 다른 것(기억은 잘 안 난다)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나왔다. 여기서 강박성향은 강박적 인격장애로 확인했던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하거나 자신이 짜놓은 계획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방금 조사해보니 외상후 스트레스가 생기면 자연스레 없어지기도 한단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없어지기는커녕 지금도 남아 있고, 20대 초반에 개인 사정으로 빚을 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기분부전이 계속 있어온 것과 더불어 치열하게 앞만 보고 살아온 결과가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마디로 나를 돌볼 여유나 시간이 없어 지금 내가 너무 아프니 돌보고 휴식을 취하라고 마음에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정신증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귀신을 본 것(지금은 안 보인다)과 보이지 않더라도 기운을 느끼고 혹은 환청이 들리거나(몇 년 전에 들은 적 있음) 환각이 보이거나(이것은 지금도 가끔 보인다) 망상을 하게 되는(비현실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인데, 모든 것이 이 증상에 해당한다. 지금 내가 괴로워하거나 힘들어하는 것과 너무 딱 들어맞았다.


그런데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있겠다 짐작했던 것이 다 맞았고, 정신과에서 처음 스트레스 결과를 들었을 때 이미 놀랬으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해서이다. 게다가 정신적인 부분은 타고난 것도 한몫 하다 보니 어느 정도 고칠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구나,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워낙 남들과 다르다는 것쯤은 스스로 아주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아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래서 결과를 다 듣고 나서 어땠냐고 물어봤을 때, 별로 놀랍지 않다고 했다. 그저 내 성격이 남들보다 유별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이러한 이유로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납득이 갔다. 전에는 '왜 그렇지?' 생각했던 부분도 있어서 의아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 한쪽에 잔뜩 쌓였던 의문이 풀리며 조금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됐다.


다만 수치가 대부분 위험 수준이라는 것이 오히려 놀라웠다. 짐작은 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스스로 제어를 못 하는 것을 느껴서 병원에 갔는데, 실제 결과로도 그렇다니.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도 담당자분이 스스로 못 느껴서 그렇지 장점이 많다고 했다. 생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잘하는 것이 있고, 책을 많이 읽어서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어 통찰력이 있으며, 능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자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 계속 남에게 인정 받고 싶은 마음과 잘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 받으려는 마음에 오히려 나에게는 박하게 굴어서 이제는 자신을 보듬어주라고 했다.

   

결과를 듣고 나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는데, 여기서는 진단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병원에 가라고 하거나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권한다고, 심리상담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약간 아쉬웠지만, 좋아지려면 장기간의 약물 치료와 꾸준한 상담이 필요하고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고 했다.

   

정신과에서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는데, 여기서도 알게 된 부분이 많아 신기했다. 약간 남아 있던 궁금증까지 해결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남은 일은 꾸준히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내 상태를 인지하고 조금씩 몸 상태를 회복하며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격렬한 운동은 아니지만 30분이라도 산책을 나가는 것도 권유받았다. 약을 아무리 먹어도 내가 인식하지 못하면 낫지 않는다고 들었으니, 지금처럼 조금씩 할 수 있는 한 무리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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