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책 읽는 날인가보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 2010년 일본 후지TV에서 방영된 기무라 타쿠야, 시노하라 료코 주연의 드라마 ‘달의 연인~moon lovers~’의 원작 소설을 완독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다 읽어보고픈 마음이 생겨 지난 번 교정교열 수업 들으러 갔을 때 산 책을 집었다.
사실 다른 작품을 읽고 서평을 써야 한다. 한 번역가 선생님이 자신이 번역한 책을 읽고 글을 써달라고 의뢰했기 때문이다. 오탈자가 있으면 알라달라는 말과 더불어 집에 있던 책도 여섯 권이나 선물로 주셨다. 고맙기는 했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니 온갖 오탈자가 눈에 거슬려 작품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 아는 사람이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출판사에서 공짜로 주고 하는 서평단 활동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느낌은 없다. 아는 사람인 데다 출판사가 유명한 곳이 아니라 잘 써야겠다는 부담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야 사람들이 검색하고 들어와서 리뷰를 보면 사고 싶게 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면 할 일이라곤 할까. 내가 듣기에는 그 분 말의 행간에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그러니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 연락해서 마감을 미루겠다고 했을 때, 부담 갖지 말라고 하셔서 그나마 낫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글을 다루고 매만지는 사람이다보니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 아닌 이상 성심을 다해 일하는 행위가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돈을 받지 않고 하는 일은 체력은 체력대로, 기력은 기력대로 상한다. 저번에 번역 학원 동기가 첫 역서를 냈을 때 서평 써달라고 해서 다섯 번을 읽었음에도 한동안은 쓰지 못했다. 마무리는 6개월이 지난 뒤 지어졌다. 그만큼 나에게는 우선순위가 뒤처질 수밖에 없다. 써주고 싶지만 부담만 커질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슬픈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돈을 받고 하는 일따위는 없었다. 내가 하고 싶어 서평단을 신청해서 몇 날 며칠 혼신의 힘을 발휘해 글을 써댔다. 그렇게 한 달에 두 편씩 완성해서 올려두었다. 일 년이 훌쩍 지나 이 년이 다 되어갈 무렵, 번아웃이 왔다. 책을 받는 대신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사투를 벌였지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품이 너무 많이 들고 체력이 소모되었다. 그거 한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매달릴까.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히고 지쳐갔다. 한 서른 편쯤 쓰고 나서 고심 끝에 부담을 덜고자 인스타그램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담 없는 마음과 초고를 쓴다는 심정으로 첫 글을 올린 다음부터 푹 빠져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오탈자가 나오든 띄어쓰기가 틀리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고치면 되는 거니까 쓰다보면 좋아질 거라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하니 확실히 부담은 없었고 블로그에서 하지 못했던 일상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블로그에서는 책 이야기만 하고 출판과 비슷한 환경이다보니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때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인스타그램에서는 그러지 말자고, 자기검열따위 신경 쓰지 말고 내키는 대로 쓰자고 했더니 힘이 빠진 대신 이야기를 푸는 능력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덕에 편안하게 쓰게 되었다. 그 날 있었던 특별한 이야기를 재밌고 좋은 말로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블로그 할 때 겪었던 감정, 생각, 느낌이 쌓여 인스타그램 할 때 모든 것이 경험이 되어 녹아들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그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겠지. 부담은 덜고 글은 많이 쓰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새로운 일을 할 때 이러한 경험들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맨 앞에서 언급한 책도 곧 읽고 마무리하겠지. 그래, 여태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