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다녀왔다. 3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차례가 왔다.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웬일로 사람이 많이 없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선생님이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오늘은 아침부터 수업 듣고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책을 사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와중에 옷차림은 샤 스커트를 입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보고 “오늘 어디 가요?”라고 물어보셨다. “아니요, 학원 갔다 왔어요”라고 했더니 무언가 헷갈린 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알고 보니 내가 수업을 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저번에 교정교열 수업 듣는다고 말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니까 수업을 하고 온 건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럼 내가 잘못 안 거죠?”라고 물어봐서 처음에는 가만히 있다가 다시 물어봤을 때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라면 “아니에요, 그럴 수 있죠. 저도 그럴 때 많아요”라고 했을 텐데 이상하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도 선생님의 잘못이라고 말하는 게 싫었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오히려 당사자가 바로 앞에서 자기가 잘못 들은 거라고 말하는 모습이 어색했다. 내가 그렇게 잘 못 하니까 다른 사람이 그러는 게 어색하게 느껴진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럴 때 “그런가?” 하고 말아버린다. 인정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지만 이상하게 부끄러워 넘겨버리는 것이다. 지금 쓰면서 드는 생각은 ‘아님 말고’라는 회피하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는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수긍하는 모습을 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미안하다는 말도 바로 앞에서 하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 돌고 돌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지금이 되어서야 하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얼마나 스스로의 감정을 인지하고 있나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정신과 진료를 받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늘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한 걸음 물러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인지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없었다. 그저 감정과 하나가 되어 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고 쾌락을 만끽했을 뿐, 그것을 인식하고 알아주는 마음따위는 없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내 안의 또다른 자아인 내가 화가 나도 단단히 나서 쌓아놓다가 지금에 와서 화산이 폭발해 마그마를 마구 분출하는 상황에 도달한 것일 테지. 도망가려 해도 엄청난 속도로 따라오는 그것을 내가 어떻게 따돌리겠나 싶다. 당연히 온몸은 뜨겁다 못해 화상을 입히는 마그마와 불순물과 미세먼지 같은 가루가 잔뜩인 미세먼지로 뒤덮이겠지. 100년 후 오늘, 나는 폼페이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경기도 부천에서 화석으로 발견될 것이다.
다시 진료실 상황으로 돌아가자. 선생님은 갑자기 수업을 해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셔서 한 곳에서 제의는 왔었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할 게 많기도 해서 이 수업을 듣고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번역에 관해 이야기를 하게 되어 내가 하고 싶은 분야와 번역가의 처지에 대해 이것저것 털어놓았다.
그렇게 말하니 선생님이 “은아 씨, 꼭 책 써요”라고 말씀하셨다. 전에는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요”라고 했는데, 또 오늘은 희한하게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내용이 나오는데 괜찮나요?” 이렇게 질문했다. 부연 설명으로 선생님이 질문하면 그에 대한 답변과 나의 생각을 적어놓았다고 했다. 그저 선생님은 “그래요?”라고만 하셨다. 아마 글 보여드리겠다고 하면 좋아하실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러고 나서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물어보셔서 일찍 먹고 일어나 있다가 잔다고 했고 식음을 전폐하던 시기보다 잘 먹는데도 저번에 몸무게를 쟀더니 1킬로그램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이번에도 좀 더 먹는 약으로 지어주겠다고, 너무 힘들면 빼고 먹으라고 설명해주셨다.
다음 진료일은 13일 후이다. 약을 받아 나오는 길에 오늘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이야기가 계속 떠올랐다.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예기불안이 있는데 괜찮은지, 공황 증상이라고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건지에 대해. 참 많은 일을 하고 귀가하는 오늘이 무언가 모르게 신기하면서도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