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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Oct 29. 2020

생채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엄마에게 서운한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경기도에서 논술시험을 보았다. 나는 그때만 해도 독서만 했지 글을 써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글의 기억자도 모른 채 시험에 나온 문제를 분석하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것을 적어나갔다. 말이 시험이지 경기도 내에 사는 고등학생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어서 부담 없이 치렀다.


그런데 하루는 운동장에서 조회를 하는데 이름을 호명하면 앞으로 나오라는 소리를 들었다. 보통 조회시간에 이름을 부르면 상을 받는 거라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잘하는 것도 없고 상이라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도 않았다.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서 있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어라?’ 하면서 줄 서 있는 맨 앞에 나갔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단상에 올라가는 사람 두 명까지 도착하니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상을 수여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하다가 무슨 이야기지, 했는데 얼마전 치른 경기도 논술대회에서 동상을 받았다고 했다. 상장은 교실로 돌아가면 줄 거라며 담임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주셨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고 이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말했다.

“나 상 받았다!”

“무슨 상인데?”

“논술로 동상 받았어.”

이렇게 말하면 엄마가 좋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래?” 하더니 원래 하던 집안일에 집중했다. 반응이 시큰둥해서 머쓱해진 나머지 방으로 들어가 혼자 좋아했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개근상만 받았던 터라 정말 기뻤다. 내가 무언가를 오롯이 해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에 비해 엄마는 반응이 뜨듯미지근한 것이 영 별로였다.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썩 개운하지 않았다. 서운했기 때문이다. 상이라도 받으면 칭찬 한마디라도 해줄 줄 알았더니 “그래?”라니. 아무리 기분이 좋지 않아도 자식이 상을 받으면 잘했다든가 기분 좋겠다며 같이 기뻐할 줄 알았다. 알아서 크는 거라며 바쁘다는 핑계로 거들떠도 보지 않아서 부모님 일하러 나가면 학교 끝나고 돌아와서 동생 밥 챙겨주었다. 친구도 별로 없고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엄마와 친해서 엄마에게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하지만 정작 정말 필요할 때는 말하지 못했다. 혼자서도 잘하는 어린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동생이 있으니 잘 돌보고 집 청소도 하고 엄마가 밥 해놓은 거 차려주고 정리하고 그랬다. 엄마 아빠가 필요할 때만 우리를 불렀지, 우리가 필요할 때 말하면 무조건 안 된다고 다그쳤다. 설득따위는 없었다. 안 한다고 하면 “너 왜 그래?”였고 나는 말을 잘 듣는 아이여야만 했다.

 

그러니 누군가가 부탁할 때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부모님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도 나타나서였다.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할까봐 싫어할까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거절하면 미움 받아서 또다시 버려지고 내쳐질까봐 그랬다. 나를 좋아해주길 바라고 싫어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자란 아이는 거절을 할 줄 몰랐고 서운함만 쌓여갔다.

     

대화가 없는 가정은 가정이 아니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 속에서 홀로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다 곪아갔다. 염증처럼 퍼진 생채기는 암처럼 몸 전체에 퍼져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밖으로 나와 우울증이란 감정으로 진화했다. 한 번 상처받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옅어져갈 뿐 없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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