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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Oct 28. 2020

서른이 되고 보니 나쁘지 않다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며 들었던 생각

어느덧 7개월 차 프리랜서이다. 정식 의뢰를 받고 하는 일이 두 달째 들어오지 않아 백수처럼 지내고 있다. 평소 즐겨 하던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하기도 하고, 재택 근무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12월에 있을 시험 준비도 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인연이 된 1인출판사에서 여는 이벤트에도 참여할 생각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평일 오전부터 저녁 즈음까지 하는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오늘은 무엇에 대해 적을까 생각해보다가 불안하지만 재밌는 프리랜서 생활을 하기까지의 여정을 곱씹어보려고 한다.

 

전에는 긴장된 상태에서 집으로 돌아와 밥을 허겁지겁 먹고 곧바로 방에 들어가 일만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해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하루에 주어진 일과 처리해야 할 것에 주목할 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병행해야 하는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쉬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날 끝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 다음 날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에 쫓겨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불안과 우울을 경험하면서도 꿈을 이루고 싶은 절박함에 그런 생활을 4년간 했다.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다. 방법은 없다고 믿었다.


20대 후반을 그렇게 보내고 30대를 맞이했다. 서른이 되었다고 달라지지는 않았다. 어릴 적 꿈꿨던 부유하고 여유로운 시간따위는 오지 않았다. 아니 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죽을 만큼 괴롭고 녹록지 않은 처지에 놓여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사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한다니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미칠 것 같았다. 돈이 뭐라고, 삶이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이게 뭐라고 나를 이렇게 급박하게 하는가. 자괴감과 불안함, 우울함은 바닥을 쳤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다고 생각했고, 그 끝에 있던 것은 우울증과 공황장애였다.


바닥을 치고 또 쳤더니 그 밑에 다른 바닥이 있었고, 구덩이가 있었다. 혹시 이게 나가는 구멍은 아닐까 싶어 계속 팠더니 또 바닥이 있었다. 끝은 어디일까 알 수 없었다. 가장 밑바닥 중에 밑바닥이 있다면 그곳이 여기일까. 아니 더 밑이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바닥이 나를 끌고 내려가 더는 돌아오지 못하는 깊은 심연으로 빨려들어가게 할까. 끝을 알 수 없는 고통이 옥죄어오고 숨을 쉴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지속될 거라 믿었던 그때, 한 줄기 빛이 들어왔다.


가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손을 내밀었다. 병원을 가라고 조언해준 선배의 말과 돈 걱정 말고 다니라고 말해준 가족,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해도 된다고 해준 정신과 선생님, 치유 글쓰기 같이 해보자고 권유한 독서토론 선생님. 이외에도 다양한 분들이 디엠이나 카톡으로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고 가장 힘들었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혼자 일어서기 힘들었던 시절을 버티게 도와주었다. 덕분에 고통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일상을 되찾아가며 하나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떠한 루틴으로 일상을 보내는지, 성격은 어떤지.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지만 일에만 몰두했던 지난날과 달리 하고픈 것을 마음껏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을 때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싶을 때는 게임을 한다. 스트레스 푸는 법도, 공황장애가 올 때를 대비해 집중하는 법도 찾아가고 있다.


일에 지나치게 빠졌던 그때를 돌아보면 억지로 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지금은 돈은 상대적으로 덜 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없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찾으며 무리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하다.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을 덜어낸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도 느끼기에 일을 하면서도 즐기는 듯한 모습이 보일 정도다.


가끔 슬럼프가 찾아와 절망하고 허망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때는 그렇게 우울하고 힘들 수가 없다. 하지만 선생님이 처방해준 약을 먹고 안심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렇게 하고 나면 편안해진다. 인정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조금은 살 만해졌다. 나만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았다. 덕분에 힘을 내려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왜 그렇게 남을 의식하며 살아왔는지,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붙이며 힘든 상황으로 몰고갔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나도 모르는 존재에 마음을 빼앗겨 먼 미래의 꿈을 좇았던 것 같다. 안 되면 어떡하지 고민하며 불안에 견딜 수 없는 마음이라고나 할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른이 되고 보니 나쁘지 않다.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제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나에 대해 알게 되어 다행이다. 불안하지만 프리랜서가 되어 좋다. 덜 벌지만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 그러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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