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루나무 Oct 29. 2020

트라우마와 마주해보려 한다

병원에 방문했다. 4시에 예약했는데 차가 막혀서 10분 늦는다고 연락한 후 갔다. 요즘 자꾸 차가 막히는 일이 잦아서 걱정이다. 환자도 많던데 자꾸 늦으면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엄마는 왜 이리 빨리 가냐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약 시간 30분 전에 출발하는 것이다. 그리 빠른 시간도 아니라서 버스 한 대 놓치면 그 다음 차는 적어도 4분은 기다려야 하니 짜증이 났다.  

    

물론 늦는다고 죄송하다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지난 글에도 적었지만 나는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을 제일 싫어해서 나 자신이 그 시간에 못 맞추는 것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조금만 늦을 것 같아도 왜 이렇게 차가 안 올까 짜증부터 나고 불안하고 가끔은 화도 난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을 보더라도 그런 생각이 먼저 들 테니까.

     

다시 병원 다녀온 이야기로 돌아가면, 진료실에 한 분이 들어가 있어 체온 측정 하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내가 먼저 들어가고 엄마가 나중에 들어가기로 했다.


들어가서는 어제 오열한 것과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환풍기 소리가 들리면서 앞이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저히 말로는 다 못 할 것 같아 글 쓴 것을 보여드렸는데 선생님이 엄청 놀라서 이걸 겪은 게 언제냐고 물어봐서 열다섯, 열여섯쯤이라고 했더니 한참 민감할 나이에 상처가 컸겠다고 했다. 나는 그때 마침 초경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사촌 동생들과는 적으면 네 살, 많으면 아홉 살까지 차이 났다.


그래서 그때 너무 힘들었고 어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었다고도 털어놨다. 선생님이 중학생이면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상처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겠냐고 물어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했다. 정말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풀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면 모를까.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그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기는 하다. 그래서 더 모르겠다. 어렵게 느껴지고.   

  

선생님은 성에 관련된 문제가 어렵다고 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성추행이나 성폭력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상황이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해주셨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겪은 일이 보통 일이 될 수 없고 나에게는 그것이 너무 큰 생채기로 남아 지금까지도 영향이 있는 거겠구나 싶었다.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 크게 다가올수록 뇌리에 깊게 박혀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한 많은 사건이 드라마 같다고도 사람들이 그랬으니 나도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 같다.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한 일들이 많았고 그것 때문에 상처도 받았다. 어제 글로 정리하고 나니 괜찮아지는 것 같아서 이제는 병원 다니면서 힘들겠지만 용기를 내보려 한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왕따나 일진들에게 당한 것은 말하기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말하고 나서 괜찮아진다면, 정리가 되어 더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아도 된다면 마주해보려 한다. 그래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이전 22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